나주 정수루 북에서 보는 선택의 역사

나주 정수루 북에서 보는 선택의 역사

<최혁 남도일보 주필>
 

한반도에 불던 봄바람이 돌풍을 맞아 겨울바람으로 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북한과 미국은 북미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핵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한반도에는 훈풍이 가득했다.

그런데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5월22일 한미정상회담을 일주일 정도 앞둔 5월16일부터 북한 측이 남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를 돌변한 것이다. 북측은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보였던 ‘통 큰 양보와 이해’와는 달리 사소한 문제를 들고 나와 남한 측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소하고 더 나아가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까지 던지고 있다.

대화를 거부하고 다시 어깃장을 부리고 있는 북한을 보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음을 절감한다. 선택지는 ‘평화냐, 전쟁이냐?’이다. 평화에 희망을 품고 있는 이들은 지금 한반도를 엄습하고 있는 한랭전선을 협상과 전략에 능한 북한 특유의 ‘냉온탕 전술’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측이 핵을 포기하기로 내부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더 많은 것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관측이다.

현재의 상황에 비관적인 이들은 무력사용이 해결책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의 매파(강경파)들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매파들을 잘 설득해 어떻게든 북미회담이 잘 성사되도록 매파(媒婆:중재자)역할을 잘 해야 할 처지다. 남한과 북한, 북한과 미국 측의 ‘밀당’을 보면서 국민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지, 아니면 남북이 군사적 긴장상태로 다시 돌아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모습은 428년 전에도 이 땅위에 일어났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인지를 놓고 조정대신들이 두 파로 갈려 공방을 벌였던 것이다. 조선조정은 일본의 조선침략 소문이 무성하자 1590년 일본사정을 탐지하기 위해 통신사를 보냈다. 통신사 중 정사는 서인인 황윤길(黃允吉)이었고 부사는 동인인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서장관은 허성(許筬)이었다. 통신사 일행은 1591년 음력 2월 부산에 돌아와 각자 조정에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보고내용은 서로 달랐다. 황윤길은 ‘반드시 왜군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성일은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의에 매우 어긋납니다”라며 일본 측의 침략이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결론적으로 동인 김성일의 판단은 틀렸다. 1592년 4월13일 일본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21만의 대군을 동원해 조선을 침략했다.

김성일은 이황의 수제자로 학문의 깊이가 깊었다. 그리고 거짓말과는 거리가 먼, 강직한 인물이었다. 또한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일본이 조선침략을 할 조짐이 없다”며 조선조정이 전시체제로 들어갈 것을 막아버린 것은 지금도 사학계가 풀지 못한 미스터리다. 실록에는 황윤길의 전쟁발언으로 민심이 크게 동요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리 말한 것이라 기록돼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김성일은 임진란 직후 ‘왜란을 불러온 장본인’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임진·정유재란 이후 권력을 장악한 서인에 의해 김성일의 실책이 의도적으로 부풀려지고 과장된 것은 사실이다. 김성일은 그릇된 판단을 내린 죄로 파직됐다. 선조와 대신들의 무능을 덮어씌울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김성일은 곧 경상도 초유사(招諭使)에 임명됐다. 백성들의 신망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는 진주성 전투를 지휘하다 1593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 김성일은 나주목사를 지냈다. 임진왜란 8년 전인 1584년, 47세의 나이에 나주목사로 부임해 왔다. 강직한 성품으로 송사를 처리하고, 백성들을 잘 섬기던 그가 설치한 것이 지금 나주 금성관 옆 정수루(正綏樓)에 있는 북이다.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정수루의 북을 울리라며 신문고를 설치했다. 우리는 정수루의 북에서 반면교사(反面敎師:그릇된 일에서 교훈을 삼는 일)를 찾을 수 있다. 감정과 당파에 따른 결정은 피해야 한다.

정수루의 북에서 우리는 역사를 본다. 결정에 대한 엄중함도 느낀다. 지금은 역사의 분기점이다. 어디로 향할지에 민족의 운명이 걸려 있다. 맛있는 나주곰탕을 먹으러 가는 길이면 곰탕거리 주차장 입구에 서 있는 정수루에서 발걸음을 멈출 일이다. 조선과 대한민국을 떠올려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어제의 역사에는 내일의 길이 있다. 남북관계가 혼미한 지금, 정수루의 북을 바라봐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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