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92>-제7장 비겁한 군주

정충신이 한양에 이르러 남산에 올라 바라보니 도성은 조선의 수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불에 타거나 허물어졌고,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도 불에 타버렸다. 청계천, 명륜천, 홍제천, 장안천을 건너는 삽교·잔교는 끊어지고, 식량과 보급품을 얻지 못한 백성들은 들에 자라난 풀을 뜯어 소처럼 연해 씹는 모습들이었다.

왜군 선봉이 한양에 입성한 며칠 후 제8군 사령관 우키타 히데이에가 들어와 남산 밑에 진을 쳤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로서 히데요시의 양녀 고히메와 결혼까지 한 사람이었다. 히데요시의 처조카인 가토 기요마사, 맨먼저 입성한 고니시 유키나가도 제치고 히데요시는 그를 조선점령군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그만큼 신임이 두터웠다. 그런데 그는 열아홉살의 나이였다. 30대의 두 장수를 제낄 힘이 없었으나 다행히 두 사령관이 피터지게 싸우니 중간에서 어부지리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인물값 하느라고 그는 비교적 인품이 있었다.

그는 한양을 두루 돌아보며 민심을 살폈다. 일본군이 나서지 않아도 벌써 나라는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 많은 군대를 동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빠질 나라라는 것을 알았다. 칼에 많은 피를 묻혔으나 그는 힘없는 백성들을 보자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썩은 다람쥐는 물론 길바닥에 숨져있는 사람의 시체도 거둬다 삶아먹는 꼴을 보고 그는 민심을 수습하기로 마음 먹었다.

“질서를 잡는답시고 백성들 패지 마라. 백성들은 우리 편이 될 수 있다. 저절로 무너지고 있으니 휘하 부대는 자중하라. 점령군이 아니라도 스스로 망해가고 있다.”

그가 선정을 베풀자 곧바로 여론이 바뀌었다. 점령군이 들어오니 살았다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혼란은 내부인끼리 다투는 데서 비롯되고 있었다.

“얼굴도 미남인 총사령관이 나랏님보다 낫다.”

“우와, 왜나라에 저런 훤출한 키에, 저런 미남이 있다니 놀랍다.”

여염집 여자들까지도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반안 같은 저 사람과 한번만 동침해봤으면…”

반안은 중국 서진(西秦)시대의 문학가인데, 얼마나 깎아놓은 듯한 미남이었던지 한번 외출하면 여성들이 바치는 과일과 꽃이 가득하다 하여 척과영거(擲果盈車)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반안은 미남의 대명사가 되어 모사반안(貌似潘安), 즉 “용모가 반안과도 같구나”라는 한자 숙어가 나왔다.

“나는 그의 얼굴 한번 바라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인생으로 태어난 것이 보람이 있누나, 할 정돌세. 남자인 나도 반할 판인데 여자들은 어쩌겠나. 그냥 자지러지지. 게다가 선정까지 베푸니, 정말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감이여.”

“이 새끼야, 정신 차려. 쪽바리는 쪽바리지 뭐가 지도자야. 그 선정이란 것도 지네들 전략중의 하나인데 벌써 헤롱헤롱 사지 늘어뜨리고 자빠져 있냐? 그렇게 헤까닥 가버리면 우리 임금님이 어떻게 되느냐 말이야?”

이렇게 반박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삶이 팍팍할수록 그런 생각을 가진 자도 적지 않았다.

거적대기 같은 것으로 간신히 아랫도리만 가린 한 사내가 소나무 밑에 웅크리고 앉아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행색이 이상해서 정충신은 나무 뒤에 숨어서 그들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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