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8일! 기억할 것인가? 상상할 것인가?

5월28일! 기억할 것인가? 상상할 것인가?

<정용식 남도일보 상무>
 

#73년의 단절이 던진 충격

충격이다. 얼마만인가? 분단 73년. 멀게만 느꼈던 남북관계가 두 정상이 긴급 현안 논의를 위해 한달에 두 번을 만난다는 것을 영화에서나 상상해 봄직 했을까? 격세지감이다.

이게 상식이다. 진즉부터 그래야 했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우리를 지배해온 것이 그간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국경이 무너지고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첨단시스템에 의해 각국의 모든 정보가 실시간 공유되는 글로벌화 시스템이 시작된 지도 20여년이 넘어섰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었다. 40여년 전 우리가 깊은 상처를 주었던 베트남, 적대적 이념체제의 중국, 러시아와도 상호 이익을 위해 얼마나 많은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는가? 남북전쟁의 비극도 이미 65년이 지났건만 등 맞댄 같은 민족끼리 미래의 이익을 공유할 수 없었다는 말인가? 이건 비극이었다.

#38년 전의 기억

비겁함과 두려움에 떨며 숨죽이며 눈물만 흘렸다. 탱크, 기관총, 헬기의 굉음. 경고방송. 이불 속에서 그 소리들을 가슴에 묻었다. 38년 전 5월 27일 아침은 그렇게 밝아왔다.

10여일간의 거리에서 외침과 나눔, 저항과 해방, 아픔은 사라지듯 거리는 다시 잘 정돈되고 5월 28일 일상으로 돌아가 학교로, 회사로 바삐 움직였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학교로 향했지만 입안에 가득 머금었던 눈물은 결국 한이 되고, 정신이 되고, 기억이 되어 고착되어 38년이 지나도록 5월만 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금방 눈가가 촉촉해진다. 강산도 바뀌고 사회도 빠르게 변해 이제는 두려움도, 분노도, 비겁에 대한 자책도 없어졌지만 그냥 눈물이 나오는 것은 그대로다. 아직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끝까지 부르지 못한다.

아마도 그 80년 당시의 광주시민들은 5월 27일의 총소리와 선무방송을 들으며, 5월 28일의 비겁한 발걸음을 걸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38년 전의 기억에 갇혀 그때 머금었던 눈물을 아직도 쏟아내고 있다. 5월의 기억속에 갇혀버린 도시.

#기억하지 말고 상상하라

이스라엘 정치계 전설이라는 시몬페레스 전(前)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인정한 공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기억은 과거의 길을 되돌아보는 것이며,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상상이다. 미래는 기억하는 자가 아닌 상상하는 자의 것이다’라며 젊은이들에게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다’라며 ‘기억하지 말고 상상하라’고 역설했다 한다. 아픈 역사의 질곡을 겪어온 민족의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죽은자와 살아 남은자들의 한(恨)을 풀고 5월이면 마냥 흐르는 눈물도 멈추고 싶은데 ‘상처로서의 기억’은 그 상처를 망각했을때 만이 하루하루를 버텨갈 수 있다고 한다. 5월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미래에 대한 상상을 펼쳐나가고 싶지만, 38년 전 아픈 과거의 기억에 머문 광주! 오월에 갇힌 광주. 어찌할 것인가? 망각할 것인지?

#광주의 기억으로부터 해방을, 전두환을 법정에

시간이 지나면서 뒤틀리고, 가공된 기억을 밑천삼아 이전투구하며 정치판의 놀이개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을 본다. ‘오월팔이’라는 비아냥, ‘5월, 이제 그만’이라는 자조섞인 소리도 들린다. 정치인들의 문재인 팔이가 역겹듯, 정치인에 기생하는 5월팔이도 역겹다. 아니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그러나 아직 남겨진 과제가 있기에 이 부끄러움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적어도 광주에선 진실규명, 역사의 단죄, 그것은 미래를 향한 출발이며 기억에 머물지 않고 상상하기 위한 통과 의례로 보여지기에.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이 여전히 묻혀 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기에 그렇다. 진실의 현실화! 전두환을 광주시민에 대한 학살책임자로 법정에 세워야만 기억의 굿판이 막을 내릴 듯하다. 광주가 ‘상상’을 펼치기 위한 마지막 희생양이라 말해도 좋다. 그래야 광주가 5월로부터, 기억으로부터 해방 될 수 있고 우리의 눈물도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80년 5월 28일. 입안에 가득 눈물을 머금고 고3 교실로 향하면서 수능걱정보다 비겁함과 두려움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38년 지난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출근해야할지? 세월이 많이 흘렀고 많이 변했다. 남북관계, 5월 문제. 기억할 것인가? 상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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