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99>-제7장 비겁한 군주

“그래서 그 자들이 길을 가는 나를 불러서 그러더라니까. 몸을 깨끗이 씻으면 모양이 날 거라면서 한번 놀아주겠냐는 거야. 그래서 겁이 나서 얼른 아는 기생집으로 안내해주었지. 그놈들이 음양으로도 얼마나 수작을 부리는지 밤새는 줄 모르고 자빠져 있는 거야. 밤이 깊자 동무들을 데리고 와서 몰래 말을 가져와버린 거지. 이걸 타고 다니다가 배고프면 잡아먹자고. 한달 먹성은 될 것이로고만.”

정충신이 놀라서 말했다.

“잡아먹다니요. 아까 말한 달리기 시합을 합시다.”

“너 돈 있어? 내기를 하려면 쩐을 걸어야지.”

“이래봬도 정승판서 자제고요, 의주로 가는 길이요. 내가 돈이 없을 것 같소?”

“의주는 왜?”

“상감마마 뵈려구요. 주상전하가 집안 할아버지요.”

“글문깨나 읽었는지 꼴은 유식하게 보이는군. 그래 좋다. 스무냥씩 내기다.”

말을 훔쳐온 자가 정충신을 넣고 달리기를 시작하는데 다행히도 판문골 방향으로 달리는 마상경기였다.

“요이 땅!”

신호가 떨어지자 경주는 시작되었다. 미친 듯이 고삐를 당기자 말은 거의 날아가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는지 한참 가다 보니 뒤따르는 자가 없었다. 내친 김에 정충신은 판문골을 지나 임진강 중하류에 이르렀다. 그는 숲속에 말을 숨기고 한 숨 쉬었다. 저절로 말이 한 필 생긴 셈이었다. 의주로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었다.

“그자들도 말을 훔쳤고, 나도 훔쳤으니 고것이 고것이다. 경주를 마치고 배고프면 말을 잡아먹기로 했으니 이 말에겐 행운이지.”

그는 말의 시원한 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임진강은 방어군 군관들이 싸워볼 요량도 없이 휘하 부대를 이끌고 북으로 달아나버려서 왜의 수중에 떨어져 있었다. 나루터엔 왜군 초병과 감시병들이 무리지어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정충신은 그들을 피해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검문에 걸리면 준마도 빼앗기고 시달릴 것 같았다. 골짜기 물 흐르는 곳에 한 떼의 남자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너 이 자식, 도망병이지?”

그들이 다가와 정충신을 에워싸고 말고삐를 잡아챘다.

장정들은 구멍난 전립에 남루한 군복 차림이었다. 도망병들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우군을 때려잡아 왜의 수급 두상이라고 조정에 올리고 현상금을 받아먹을 자들일 것이다.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당신들 도망병 아닌가? 살인자들 아닌가?”

정충신이 더 당당하게 선수를 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들이 꼬리를 내렸다. 하긴 정충신이 타고 온 말이 털이 반지르르한 준마여서 그들은 말의 위세에 먼저 압도당하고 있었다. 숲 한켠에 정충신의 군대조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우린 민간인 목을 따는 사람들이 아니다.”

한 놈이 변명했다.

“그렇다면 그자들을 추격해야지. 안그런가.”

“맞는 말이다. 벽제관 안에도 몇 놈이 있다. 어떤 놈은 왜군 앞잡이를 하며 먹고 산다. 물건있는 곳, 양곡 있는 곳을 안내하면서 연명하는 놈들이다. 여자들도 잡아다 주고 있다. 그놈들 중 상당수는 왜 군관으로부터 벼슬을 받아 현감, 군수 노릇하는 놈도 있다. 우리가 죽 관찰하면서 왔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의령 왜관 대구 상주 새재 충주 곤지암에서 올라온 병사들이다. 죽은 자를 빼고 모두 도망나왔다. 당초 싸움이 안된다. 보아하니 귀하는 무술깨나 하는 것 같은데 그대 군사들이 우리편에 서면 어떤가.”

“나는 의주 행재소로 간다.”

“궁중 병사인가?”

정충신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정에 원한이 많다. 군량도 부족하고 무기도 없이 싸우라고만 한다. 그러니 나가면 다 죽는다. 그래서 조정에 복수심을 갖고 있다. 귀하도 건달들에게 돈 털리고 목숨 날아갈지 모른다. 조심해라.”

“왜 나한테 친절한가.”

“행재소에 가면 꼭 말해달라고 해서다. 성상께서 한양으로 돌아오셔서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진언해라.”

그러자 다른 장정이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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