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그녀의 아들

그녀와 그녀의 아들

<최혁 남도일보 주필>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50대 초반의 나이였음에도 해말간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까? 아니면 얼핏 스쳐가는 수심(愁心) 때문에 그랬을까? 분명치 않지만 적요(寂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눈 다음, 그녀는 기자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 아이를 기억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렇게 나지막하게 말을 건네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여인의 아들은 해병대원이었다. 지난 2010년 마지막 휴가를 나와 엄마 곁으로 오다가 세상을 떴다. 연평도에서 서해바다를 지키던 그 아들은, 북한의 포격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됐다. 아들을 잃은 그날부터 그녀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살기는 살았지만 사는 게 아니었다. 황망함의 연속이었다. 땅을 딛고 있어도, 발걸음은 허공을 헤집는 것 같았다. 그런 세월이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참으로 야속하게도 세상은 그 아들을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

기자는 그 여인의 아들 이야기를 몇 차례 글로 썼다. ‘나라를 지키다 장렬히 숨져간 우리의 아들을 망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적었다. 여인은 그 글들을 읽은 모양이었다.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여인은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아들을 잊지 않고 기사로 다뤄줘서 고맙다”고 거듭 말했다. 여인은 세상이 아들의 죽음을 잊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모양이었다. 그 여인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여인과의 만남을 주선해준 사람은 A씨였다. A씨 역시 그 여인을 안지는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그 여인과 업무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1년에 두 세 차례 셋이서 만나다가 나중에는 기자의 처가 합세해 넷이서 만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되도록 ‘남자아이’를 화제로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 사이 화제가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을 때가 많았다.

다행인 것은 그녀에게 둘째 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형이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할 당시 동생은 어린 중학생이었다. 중학생이었던 둘째는 이태 전 대학생이 됐다. 둘째 역시 인물이 훤했다. 미남형에다 체격도 건장했다. 느닷없는 형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돼 버린 상황에서 방황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잘 추스른 모양이었다. 그녀는 둘째 이야기를 하면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우리까지 덩달아 마음이 밝아지곤 했다.

최근 들어서 그 여인과 A, 기자와 아내, 우리 넷은 자식들 이야기를 편하게 한다. 예전에는 불식간에 그녀의 큰 아들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들 멈칫했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다 잠시 뒤 소소한 다른 화제로 말을 옮겨갔다. 지금은 일부러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서로가 음식도 편하게 먹는다. 많이 친해진 탓도 있을게다. 큰 아들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TV 드라마 이야기만 하고 올 때도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그녀는 일상(日常)을 되찾은 듯싶다. 그러나 어디 그러랴? 가슴에 항상 품고 있는 이가 아들인데, 단 한시라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날마다 마주치는 그 숱한 청년들의 목덜미와 등에서 아들의 자취를 느낄 것이다. 사람들을 만난 뒤 집으로 돌아가 비어있는 방문을 열 때, 한꺼번에 몰려드는 그 적막감은 아마도 아들의 부재에서 비롯된 일일지도 모른다. 감히 그 누가 그 고통과 회한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안다고 말하랴?

우리 넷은 2년 전 6월 어느 날, 대전국립현충원을 함께 찾았다.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 그녀의 시선은 차창 너머 하늘가에서만 맴돌았다. 젖을 먹으며 방긋 웃던 그 아들, 몇 걸음을 걸으며 재롱 피우던 그 아들이 거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여인은 그날 많이 울었다. 아들의 묘비를 부여안고 울고 또 울었다. 다른 참배객들도 같이 울었다. 돌아오는 길 그녀는 행복해 했다. 그렇게라도 만나고 오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현충일인 오늘, 그녀는 아들을 만날 것이다. 서해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에서 아들과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시나브로 남북이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 절로 여인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남북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묻어두자는 말들은 그녀에게 송곳이 되고 갈퀴가 될 것이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기억해야할 일은 기억해야한다. 그녀의 아들을 잊지 않고, 잘 기억하는 우리들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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