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과거는 반복된다
잊힌 과거는 반복된다.
<최유정 동화작가>
요 며칠 난징학살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작가공부모임에서 다뤘던 주제라 전에도 읽었던 책인데 웬걸, 책장 넘기기가 수월치 않다. 갈피갈피, 구절구절, 보이지 않던 문장이 보이고 그냥 넘어갔던 장면이 보인다. 난징학살에 관한 원고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 것 같은데 첫 문장을 찾아낼 때까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을 아마도 손에서 놓지 못 할 성 싶다.
어제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987년 6월 항쟁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제안 전화였다. 그러고 보니 벌써 6월7일! 며칠 후면 곧 6·10항쟁 기념일이다. 문득 작년 이맘 때, 대학 선후배들과 영화 1987년을 함께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6월 항쟁은 31년 전의 기억이 되어 이제 역사의 장강으로 스며들어가고 있다. 전화를 끊으며 세월이 정말 쏜살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책상 위 핸드폰이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이번 주 계획된 작가초청강연을 상기시키는 문자메시지였다. 이번 작가초청강연은 동학 관련 역사 동화 <녹두꽃 바람 불 적에>가 출간되자마자 인근 중학교에서 요청, 성사된 강연이다. 강의 준비를 단단히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사이 이렇게 들어오는 일련의 작업들이 다 ‘역사’와 관련된 일들이다. 사실 이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나는 역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요구와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물밀 듯 들어오는 일들을 감당해내려 애쓴다. 때론 공부를 자처하고 품을 들여 현장답사도 한다. 다른 그 어떤 글쓰기보다 한 문장 한 구절이라도 더 명백하고 정확하게 쓰려 노력한다. 사실 부족한 능력을 핑계 삼아 거절하는 것이 회피나 외면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이지만 어쨌든 나는 운명적으로 들어오는 일련의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으로 내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를 다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일련의 작업을 통해 새삼 많은 것을 다시 배우고 느끼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자신이 없으면서도 ‘역사’와 관련된 일련의 일들을 거절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것일 수도 있겠다.
“잊힌 과거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살짝 뒤집어 보면 역사적 사건을 반드시, 꼭 기억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왜일까? 왜 낡은 것이 되어버린 일, 사건들을 구태여 되새기고 기억하자고 애면글면 매달리는 것일까? 정신없이 변화되고 새로운 것들이 무수히 생산, 배출되는 시대에 왜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난징학살, 5·18, 6·10항쟁, 세월호 따위를 왜 자꾸 끄집어내고 다시 들춰내려 하는 것일까? 왜일까? 요사이 나는 모든 글의 첫 줄에 이 물음표를 얹어 놓는데 이 물음표만이 “잊힌 과거는 반복된다”는 문장을 명백하게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문장 때문에 매우 슬프기도 하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하게 공동체를 짓밟았는가? 인간을 살인병기로 만들면서까지 얼마나 폭력적으로 오욕의 역사를 만들어냈는가? 슬프고 슬픈 역사적 현장을 다시 기억하고 발견해야 하기 때문인데 나는 기억과 발견을 통해 인간의 문명이 얼마나 종잇장처럼 얇은지 또한 여실히 다시 느낀다.
어쩌면 역사를 기억하고 배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위험한 시기에 위험한 집단이 위험한 문화를 만들어 내 위험한 논리를 강요했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적 위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웠다. 반공논리, 지역주의, 이분법적 사고 등이 그렇다. 위험한 논리를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 조차를 인식하지 못하고 수동적 방관자가 되어 나도 모르게 권력에 충성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던 세월들. 그 세월은 숱한 죽음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시간들이지만 또한 절대 권력을 무너뜨린 거대한 힘, 단결과 끈기, 의지, 사람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가장 강하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는 시간들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만든 문화적 위력이 단결과 끈기, 사람에 대한 사랑과 헌신에 있음을 배우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더 뭉치고 더 단결하고 더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 검증된 건강한 문화적 위력을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는 요즈음, 글을 맺으며 아이리스 장이 쓴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일독을 권한다. 많은 분들이 일독을 통해 역사는 정녕 누구의 편인지, 내가 주인 되는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찾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