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04>-제7장 비겁한 군주

-호남은 국가 보위의 근본이며 왕실의 발상지입니다. 선조께서 남쪽을 염려하시어 광주 목사를 신에게 제수하시었습니다. 신의 천한 발자취가 서쪽에 이르러 뼈를 갈고 피가 마르도록 국가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부임하는 날 광주 사람들 중에서 오백 명을 모병하였으며, 정사(政事)의 여가에 노인들을 찾아본 것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이에 단에 올라 약속을 맹세하고 용만(龍彎:왕이 몽진한 의주 지방)을 향하여 통곡하니 눈물이 흘러 냇물이 되옵나이다.

여기까지 읽어내려가던 선조가 생각이 난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 도승지 말대로 자칫 지켜내지 못할 뻔했던 호남을 지켜냈다고 말하려 하는군.”

“그렇사옵니다.”

-왜적은 금산을 침범하여 권종을 죽이고, 의병은 진산에 이르러 조헌이 죽었습니다. 고바야카와(다카카게)는 수만 명을 이끌고 정탐하여 승려 영규가 거느린 칠백 용사가 전멸하였는데, 이때에 저희는 진영에 앉아서 논리만 내세우고 왜적을 규탄하며 탄식만 하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옳거니. 당연히 그래야지. 분연히 일어서야지.”

선조는 어느새 글에 깊숙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10월이지만 벌써 삭풍이 몰아치고, 갈대로 벽한 사이로 찬바람이 송송 들어왔지만 한기도 잊고 있었다.

-예리한 군졸은 용기를 내어 말머리를 남으로 돌려 눈물을 머금고 도내(道內)의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고, 막료들과 숙의를 거듭하였습니다. 동복(화순)현감 황진은 그 용맹함이 능히 군을 통솔하여 선봉이 되고, 권승경(권율의 조카)은 울분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기병(奇兵)을 인솔하기를 지원하고, 이렇게 하여 이치재(梨峙嶺)에서 마침내 적을 만나 죽도록 싸웠습니다.

선조는 어느새 삼국지를 읽고 있는 듯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그가 다시 읽기를 계속했다.

-이때 저의 병졸은 불과 천 명이오나 의로써 북을 울리니 적은 만 명이 넘어 용맹함을 믿고 돌진하여 왔으나, 묘시(오전 5-7시 사이)에서 유시(오후 5-7시 사이)까지 세 번을 승리하였습니다. 선봉 황진이 탄환을 맞고 물러서자 신이 돌진하여(적을 죽이고), 뒤따라 의사들이 용감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러면 황진이 죽었단 말인가? 황진은 황희 정승, 황윤길 통신사의 직손이 아니던가.”

선조가 낙심천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항복이 말했다.

“죽었다는 내용은 없는 것 같사옵니다. 아마도 부상을 당했을 것이옵니다. 직접 전투에 참가한 정충신이 그 내막을 소상히 알 것이온 바, 소년이 직접 진언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전하.”

“저 소년이 직접 전투에 참가했다고?”

“그렇사옵니다. 소년 정충신은 이치전투에서 유격전을 벌여서 적을 교란시키고, 적의 수급 목을 베어와 아군의 사기를 올렸나이다. 정탐병과 척후병, 연락병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승전을 이끈 숨은 주역입니다. 별호가 무등산 비호라고 하듯, 날쌔기가 번개 같사옵니다. 그저께 장계를 들고 저의 사가(私家)를 찾았을 때, 맨먼저 한 얘기가 이치전투와 웅치전투 승전보였습니다. 소인 역시 감격하여서 눈물을 흘렸나이다.”

“장하도다. 과인도 밤새 듣고 싶구나.”

“모처럼 승전 소식이니 기쁘시겠습니다. 하지만 옥체를 보살피시옵소서.”

“아니다. 신료들 쓰잘 데 없는 이야기 듣는 것보다 수백 배 힘이 나는 얘기 아니냐. 조정 신료들 다 물리치고 이렇게 사사롭게 얘기 나누니 더없이 흡족하다. 사초 기록자가 따라붙으면 사사로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지. 일일이 과인의 발언을 옮기는 것이 꼭 감시자 같아서 기분 나쁠 때가 있다.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내버려두지만, 때로 없애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다. 기록을 의식하다 보니 속엣말도 못하고 사사로운 농담도 못하니 답답하였도다. 왕조실록이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역사교과서라고 해서 묵인하지만, 사실 위선의 발언도 많다. 진실을 감춘 것도 있고 말이다. 실록을 의식하고 예와 법도를 갖추고 발언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 줄 아는가. 꼭 고문당한 기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것들을 따돌리고 얘기 나누는 것이 꼭 어린 시절 골방에서 장난치는 것마냥 재미있구나.”

“그럴 것이옵니다.”

왕은 도승지와 죽이 잘 맞았다. 그와 농담 따먹기 하는 것도 유쾌하고, 무엇보다 그는 지혜와 학문과 해학이 넘쳐나는 신료였다.

“그래서?”

하고 왕이 정충신을 향해 보고할 것을 지시하자 이항복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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