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높고 계곡은 깊었다…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진 산길

‘희망나눔 2018 김홍빈 안나푸르나 시민원정대’ 동행취재기<中>
‘꿈과 도전의 희망봉’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산은 높고 계곡은 깊었다…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진 산길
‘하루에 고도 700여m 등정? 할만하네!’…착각이었다
3천500m부터 두통·메스꺼움 ‘고소병’ 증상으로 고생
4일만에 베이스캠프 도착… “해냈다” 가슴 뿌듯한 희열이
2015년 지진피해 파쿠와 쉬리 비렌드라고교 복구비 지원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아래 해발 3천800여m 지점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폭포 앞에서 원정대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민원정대 나정희 대원 제공

‘희망나눔 2018 김홍빈 안나푸르나 시민 원정대’는 넷째날인 9일 오전 쿠스마시 파쿠와(pakuwa)에 있는 쉬리 비렌드라 고등학교를 찾았다. 이 학교에는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공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4월 지진으로 학교 건물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었으며 아직까지 교실 등 일부 복구할 곳이 남아 있다. 정원주 시민원정대 단장과 전성현 네팔 광주진료소장이 지진피해 복구를 위한 지원금을 각각 전달했다.
 

정원주 단장과 전성현 네팔 광주진료소장이 쉬리 비렌드라 고등학교에 지진피해 복구 지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너르 낫 리말 쉬리 비렌드라고교 교장은 “2015년 지진 때도 광주시 구호단이 위험지역을 마다 않고 구호활동에 앞장서줘 정말 고마웠는데 이번에 또 안나푸르나 원정대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찾아와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원정대 의료팀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광주진료소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의료팀은 이틀 간 현지인 300여명을 대상으로 안과, 치과, 내과, 소아과 진료를 했다. 네팔 사람들은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한 의료팀에 수줍은 미소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정대 홍일점인 이화진 대원이 쉬리 비렌드라 고등학생들과 라마스테 인사를 하며 미소짓고 있다.

▶히말라야 롯지

원정대는 9일 쿠스마 반다나호텔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추억의 1박을 더한 후 10일 아침 일찍 안나푸르나 카라반의 출발점인 타토파니(Tatopani)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로 비포장 도로를 7시간 남짓 달려 오후 1시 30분께 타토파니에 도착했다. 도중에 버스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1시간 정도 지연됐다.

우리가 묵을 롯지(산장)의 이름도 ‘히말라야’였다. 해발 1천235m 지점인데 휴대폰 카톡이 잘 터지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충전, 와이파이까지도 루피(네팔 화폐 단위)를 줘야 해결됐다. 히말라야 등반 경험이 많은 나정희 대원이 “이곳도 갈수록 상업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한마디 했다.

타토파니는 노천온천이 있어 안나푸르나에 온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우리 일행도 이날 오후 온천을 즐겼다. 남녀 혼탕으로 1인당 150루피(약 1천500원)의 입장료를 받았다. 별도의 수영복 없이 속옷만 입고도 입장 가능하며 한쪽에서 빨래를 할 수도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서 마신 시원한 맥주 한 잔에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셨다. 우리는 이날 타토파니에서 히말라야 롯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보냈다.
 

광주시민원정대가 11일 타토파니 롯지를 떠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본격 등정

원정대는 11일 롯지에서 이른 아침을 먹은 후 본격적인 등정에 나섰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4천190m)까지 등정 후 하산까지 6박 7일 정도의 일정이다. 타토파니에서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카라반 루트로, 우리팀이 첫 원정이라고 한다.

“라마스테” 등정길에 만난 현지인들이 우리를 반기며 하는 인사말이다. ‘내안에 있는 나의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평안을 기도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본격적인 등반에 돌입하면서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이 시작됐다. 가장 문제가 잠자리와 고소증이다. 이번 등정은 쿡(주방장)을 대동하고 한국에서 준비해간 식료품으로 한식 위주로 해 먹었기 때문에 식사에는 문제가 없었다. 모두들 한국에서보다 더 잘 먹고 있다고 이구동성 말했다. 문제는 잠자리다. 하루 종일 땀 흘리고 걸었는데 제대로 씻지 못하고 텐트에서 자야 했다.

등정 첫째날 해발 2천m 쯤 되는 곳까지 오른 후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꼬박 9시간 정도의 산행이었다. 일정표 상으로는 하루에 700여m씩 고도를 높이는 정도였기에 ‘할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히말라야는 산이 아니라 산맥인 것이다. 정상을 향해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반복됐다. 내리막길로 30~40분 정도 편하게 걷다 보면 그만큼 다시 올라가야 했다.
 

원정대원들이 등정 셋째날 해발 3천538m 지점 야영지를 향해 걷고 있다.

우리는 둘째날 해발 2천780m지점, 셋째날 3천538m 지점까지 올랐다. 일부 대원들이 고소증을 호소하며 힘들어 하는 바람에 당초 계획보다 등정 속도를 늦췄다. 고소증의 시작은 밥맛이 없는 것이다. 배가 고픈데도 음식이 먹기 싫어지면 고소의 전단계다. 그리고 곧바로 메스꺼움, 두통, 설사, 탈진으로 이어진다. 고소증이 발생하면 별다른 약이 없다. 빨리 하산하는 것이 제일 좋은 처방이다.

이날 원정대의 분위기 메이커 류명열 대원이 멋진 폭포를 배경으로 이부성 대원의 사진을 찍다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머리와 다리를 다치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

김 대장은 “원정길의 첫째는 일행의 안전”이라며 “히말라야 산행은 대원들의 컨디션과 날씨에 따라 일정을 변경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시민원정대원들이 해발 4천190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후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이스캠프 도착

14일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ABC까지 등정하는 날이다. 출발에 앞서 김 대장이 말했다. “해발 4천m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고소 예방의 가장 좋은 방법은 비아그라 같은 약이 아닙니다. 힘들면 쉬고, 물을 많이 마시며, 천천히 걷는 것이 해법입니다.”

계곡 건너편에는 숱한 폭포가 우리를 환영하고 날씨 또한 걷기에 좋았다. 구비구비 오르내린 비탈길은 가도가도 끝 없이 이어졌다. 4천m 고지에 이르자 고소증이 소리없이 찾아왔다. ABC에 거의 다다를 무렵 유명호 대원으로부터 김 대장에게 긴박한 무전이 왔다. “박 원장이 쓰러졌습니다. 심장박동수가 50개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팀닥터인 박 원장은 무릎이 안좋아 유 대원의 도움을 받으면서 힘겹게 뒤따라오고 있었다. 순간 모두들 긴장했다. 김 대장은 발길을 돌렸다. 박 원장 뿐만 아니라 모든 대원들이 고소증을 느끼며 힘들어 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기계처럼 한걸음 한걸음 옮겼다. ‘언젠가는 도착하겠지’라고 최면을 걸면서.

드디어 ABC에 도착했다.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 완주했다. ABC에 도착해 안나푸르나를 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해냈다’는 희열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눈 앞에 펼쳐진 안나푸르나는 온통 순백의 세상이었다. 눈 덮인 설산(雪山) 아래로 거대한 빙하가 흐르고 있었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었다. 과연 ‘세계의 지붕’ 다웠다.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후 김홍빈 대장의 정상 등극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내고 있다.

▶불면의 밤, 그리고 하산길

원정대는 14일 오후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후 김 대장의 정상 등극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냈다. 저녁을 끝내자 모두들 텐트로 들어갔다. 하지만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침낭 속에서 몸만 뒤척이는 대원들… 기나 긴 불면의 밤이었다. 밖에 나가 심호흡을 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히말라야의 밤하늘은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손에 잡힐 듯 펼쳐졌다. 어렸을 적 고향 하늘에서 바라봤던 북두칠성이 바로 눈앞에서 보였다. 지나 온 여정을 생각하니 가슴 뿌듯했다.

날이 밝자 만만치 않은 하산길이 기다렸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대원 5명은 헬기로 하산했다. 정상 등정을 앞두고 있는 김 대장을 홀로 두고 우리 일행은 하산길에 올랐다. 우리를 배웅하며 손을 흔드는 김 대장을 보면서 혼자 떠나는 등정길이 많이 외롭고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모두들 코끝이 찡했다. 김 대장은 “꼭 성공해서 모든 이에게 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했다.

하산길 또한 ABC를 오르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16일 산 아래 타토파니가 보일 무렵 안타까운 이동욱 대원의 모친상 소식이 전해졌다. 정원주 단장이 헬기를 불러 포카라를 거쳐 카트만두공항, 인천공항까지 하루 만에 도착해 장례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도록 배려했다.

히말라야 산행, 원정길이 힘들기만 한 일이라면 그리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나푸르나를 비롯한 히말라야에는 지구촌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신비한 매력이 있었다. 하산을 마치고 포카라를 거쳐 카트만두에 도착해서 모두가 느끼는 뿌듯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줬다.
/김경태 기자 kkt@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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