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05>-제7장 비겁한 군주

그는 정충신을 더 띄워주고 싶었다. 정충신을 띄우면 자연 그의 장인 어른도 치켜세워질 것이다.

“충신이 소년이지만 연락병 자격으로 이치전투 작전회의에 모두 참가하여 전략을 소상히 익혔다고 하옵니다. 권율 도절제사의 명을 충실히 따르면서 어린 나이에 부장 역할까지 수행했다고 하옵니다.”

“어린 자를 너무 띄우면 안된다.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해도 공은 감추는 것, 그리고 그 공은 지휘관의 몫이니, 유념하라. 일찍 핀 꽃은 조락하기 쉽다.”

그는 이상하게 질투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남의 잘된 꼴을 못보아주는 성격으로 비춰졌다. 하긴 칭찬도 그 자신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이다. 그가 다시 말했다.

“그건 그렇다치고 승전의 이야기를 말해 보거라.”

정충신이 두 손을 아랫배에 모두어 안고 마루바닥에 깔린 왕의 용포 자락에 눈을 주고 말하기 시작했다.

“황진 동복현감은 부상을 당하고 후방으로 후송됐습니다. 황진 영감과 성함이 비슷한 황박 의병장이 웅치전에서 전사하셨습니다.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웅치전투?”

“네. 전라도 진안에서 전주성으로 들어가는 웅치재에서 우리 군이 싸웠습니다. 웅치전투에는 김제군수 정담과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 해남현감 변응정 영감이 천여 명의 관·의병으로 방어진을 구축하였습니다. 군대는 황박의 1진, 이복남의 2진, 정담의 3진으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포진한 가운데 목책을 세우고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돌격 선발부대가 먼저 나가 한번 치고, 후발 부대가 또 치니 웅치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남쪽에서 올라온 왜의 별동부대 안코쿠지 군 6천은 산세가 험하니 기병 출병이 어렵고, 그래서 우리 군의 신출귀몰전이라는 유격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화살이 바닥이 나고, 탄환이 떨어져서 전력자산이 동이 났습니다. 이 사실을 안 왜군이 총포부대와 궁수부대와 창검부대와 포부대 진용을 갖춰 파도처럼 덮쳐와서 결국 아군이 전멸했습니다. 이때 황박 의병장도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웅치전에서 안코쿠지 부대와 싸워 힘을 분산시키니 저희의 이치전이 수월해졌습니다. 이치전은 이치령에서 고바야카와 2천여 정예군대와 대적하고, 고경명 고인후 고종후 3부자가 수 천의 의병을 일으켜 진산성을 점령한 고바야카와 본진 1만5천 여 부대와 싸우는 합동작전을 벌였습니다. 이때 고경명 고인후 부자가 전사했습니다. 고경명 의병부대가 고바야카와 본진과 맞닦뜨리니 권율 도절제사 부대가 고바야카와 정예부대를 부순 것입니다. 저희가 이긴 것은 고경명 부대가 진산성에서 고바야카와 본진 1만5천을 묶어두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권율 부대와 고경명 부대의 연락병 역할을 소인이 수행했나이다.”

“장하도다, 장하도다. 역시 현장에 있었던 네가 이야기하니 직접 눈앞에서 본 것같이 실감이 나는구나. 뭐니뭐니해도 고경명 3부자의 공을 길이 새겨야겠다. 과연 용감하고 위대하도다. 그를 잃으니 애석하고 슬픔을 감당하기 어렵구나.”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선조가 일순 슬픔에 젖었다. 그러나 다시 자세를 갖추더니 장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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