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어르신을 위한 제언

고독한 어르신을 위한 제언

<이승오 광주제일고 교장>
 

살아가다 보면 가끔씩 자랑하고픈 일이 있다. 소박한 동기에서 시작했는데 예상외의 결과를 얻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황혼에 만난 청춘!’

이는 지난 해 광주제일고에서 추진한 ‘어르신 생애노트 만들어 드리기’ 사업을 마치고 발행한 책이름이다. 이 책에는 김블라디미르 어르신을 비롯한 열세 분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있다. 삶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당신들의 이야기를 1년 동안 찾아온 열여덟 명의 학생들에게 담담하게 풀어내주셨다.

사업에 참여한 몇 학생의 소감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고려인 마을에서 김블라디미르 시인의 삶을 채록한 이승민(1년) 군은 한국말이 서툴러서 통역을 통하여 어렵게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유명한 문학교수님이었고 정년퇴직을 하신 후 우연하게 한국에 오시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 특히 아픈 과거를 가진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해 가면서 타인의 아픔과 역사의 아픔 등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도 아니고 러시아인도 아닌 사람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때문에 생긴 고려인들이 고향도 아니고 타국도 아닌 한국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도 다른 봉사자들처럼 정기적으로 와서 봉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고려인 마을은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학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채해온(2년) 군의 소감을 보자.

“누군가의 삶의 기록, 다시 말하면 누군가의 역사를 내 손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우리는 일종의 거시적인 학문으로 정치가 어떻게 되고 사회가 어떤 형태로 변하여 왔는지를 알아보는 것을 보통 역사라고 하지만, 개인의 살아온 삶의 행적을 정리하고 기록해 보는 것도 엄연한 역사라는 것을 배웠다. 또한, 이분들의 삶을 통하여 역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다. 내가 생애 노트를 담당하게 된 어르신은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오셨던 분이다. 역사적인 사건에 이분들의 생애를 맞춰나가고 더 깊게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지게 되었다.”

할머니의 유년시절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마음 상태를 기록으로 영원히 남겨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생애노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조찬형(1년) 군의 소감이다.

“처음 저희 할머니를 뵙기 위해서 할머니 댁에 갔을 때에는 여느 명절 때 북적이던 할머니 댁과 달리 허전하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저를 기쁘게 반겨주셨고, 맛있는 밥과 과일을 먹으면서 더 편하게 할머니와 대화하면서 더욱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할머니의 어릴 때 이야기, 가족관계, 고향,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이야기 등 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내면에 있는 생각을 저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또 할아버지와 큰아빠, 작은아빠의 어린 시절 사진, 대가족의 맏아이 준형이 형이 태어났을 때와 제주도로 모두 다 같이 여행 갔을 때의 사진을 꺼내 보면서 행복해 하셨습니다. 다정다감한 저의 가족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저도 좋았습니다.”

한강(1년) 군의 소감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생애노트 프로그램은 일시적인 방문만 하는 봉사와는 달리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게 제공하여 준다. 삶을 다시 되돌아본다는 것은 추억 속에 빠져들어 자신이 후회한 것, 잊을 수 없는 것,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서 삶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의 ‘삶’이라는 일기 속에 나의 노력이 소박한 한 점밖에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삶의 행복에 관여하였다면 나의 노력은 의미가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은 앞 세대와 뒷 세대가 자연스럽게 만나서 가족 구성원이 권위와 질서, 규범 등을 적용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가족제를 기본으로 살아온 우리나라의 가정은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핵가족 형태로 변하여, 가족 내 구성원 간의 소통은 물론 친지나 이웃 간의 교제의 폭이 현저히 줄어들고 말았다. 가족제도의 이러한 변화는 배려와 나눔의 공동체 정신을 길러야 하는 기회를 가정에서 갖지 못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불러온다.

노인 인구 3명 중 1명이 독거노인으로, 초고령화 시대의 독거노인 문제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앞에 닥친 사회문제가 되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 자녀와 동거하는 것을 원한다는 응답이 2008년 32.5%에서 2017년 15.2%로 10년 만에 절반으로 하락해, 독거노인 증가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적 관계망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친인척, 친구, 이웃이 있는 경우 자녀와 왕래, 연락하는 비율이 모두 낮아져 사회적 관계망이 과거보다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남모르는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일 것이다.

최근 영국에서는 외로움의 사회적 심각함을 인지하고 ‘외로움 담당 장관’직을 신설하였다고 한다. 외로움을 질병으로 보고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단절로 인한 외로움이 매일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도 있다. 외로움의 형태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권태로움을 느껴 사람을 회피하고 사람보다 반려동물이나 스마트폰 등과 더 가깝게 지내는 등의 개인적 외로움과, 사회 공동체의 붕괴, 고령화사회 등의 사회적 구조에서 나오는 외로움이다. 개인적 외로움과 사회적 외로움은 서로 결합되어 점차 심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외로움은 현대 삶의 슬픈 현실이다. 누구나 삶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극단적 좌절에 빠질 수 있다. 이제 우리도 우리 실정에 맞는 정책을 만들어 외로움을 관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해 광주시교육청에서 공모한 주민참여 예산 사업에 선정되어 추진한 어르신 생애노트 만들어 드리기 사업의 결과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학생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이웃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어르신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교훈을 얻고,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 사업이 시교육청의 특별 지원 사업으로 선정되기를 소망해본다.

6·13 이후, 광주교육을 새롭게 이끌어 나갈 교육감님께 정중히 제안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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