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06>-제7장 비겁한 군주

-(이치전에서)한 사람이 백 명을 당해내니 적은 패하여 퇴각하였는데 열 명 중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으며, 적의 시체는 팔십리까지 쓰러져 있었으나 우리 군사의 죽은 자는 열한 명 뿐이었습니다. 기병은 요충지에서 적의 퇴로를 차단하여 적장의 머리를 베어 바치게 하였습니다. 허나 이번에 조그마한 승리를 했다는 것이 어찌 신의 공이라 하겠습니까. 진실로 우연한 것이며, 성상의 영험이 베풀어진 것입니다. 호남에서 진을 치면서 적을 새재(鳥嶺)에서 억제하지 못한 죄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마는, 서쪽을 우러러 바라보며 용만의 말 고삐를 잡지 못하니 마음이 아프며 썩는 것 같습니다.

선조는 자신을 향한 충성심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있었다.

“조령과 상주를 지키지 못한 것은 순변사 이일의 작전실패 때문인데, 그것까지 책임을 지고 있구나. 책임감이 막중하다는 뜻이니, 과인이 믿을 만하다.”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1,2,3번대(사령부)가 부산에 들어온 것은 4월13일, 그리고 계속 북으로 진격하자 단 이틀만에 조선군 제1방어선이 무너졌다. 17일에는 낙동강에 방어선을 친 밀양부사 박진의 군대가 붕괴되고, 수령과 고을을 지키고 있던 관군들이 모조리 도망을 갔다. 지역을 지키는 수령들은 한결같이 겁쟁이에 무능력자였다.

조정은 이일을 순변사로 임명해 상주전선에 투입했는데 왜군의 진격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경, 새재로 밀렸다. 4월 24일, 한 고을의 백성이 이일에게 달려와 왜군이 코앞에 진격해왔다고 중요한 정보를 물어다 주었다. 이일은 하루동안 비상을 걸어놓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왜적이 나타나지 않자 신고한 농민을 쓸데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잡아들여 참수했다. 그러나 다음날 왜군이 쳐들어와 군관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다른 수급(首級) 목을 베어갔다. 조선군은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궤멸되었다. 미리 정보를 물어다 준 백성을 병사들 사기 떨어뜨린다고 참수하니 사기는 더 떨어지고, 이런 나라 백성 된 것이 수치스럽다고 궁수들이 쏘는 화살이 도리어 되돌아오는 상황이었다. 왜군이 사면에서 포위하여 압박해오자 이일도 도망쳤고, 남아있던 군사들은 도망가지 않은 자는 모두 전사했다.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패주하니 상주 문경 새재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계엔 간단히 언급했지만 상주 문경 새재 패배의 쓰라림까지 권율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니, 왕으로서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 도절제사와 같은 충신도 다 있구나.”

선조는 그의 애틋한 충정이 떠올라서 그 다음의 내용을 읽어내려가지 못하고 한동안 묵상에 잠겼다. 한참만에 현실로 돌아온 듯 눈을 껌벅이며 정충신에게 말했다.

“정충신이 네가 나머지를 읽어보아라.”

그러자 도승지 이항복이 나섰다.

“충신이 네가 한문자를 다 읽을 수 있겠는가?”

상당히 얕잡아보는 어투였다. 사서삼경을 뗀 사람을 업신여긴다 싶어서 정충신은 도승지를 바라보다가 묵묵히 왕 앞으로 나아가 장계를 받아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이항복이 놀라고 있었다. 그는 광주에서 장계를 찢어 새끼를 꼬아 망태기를 만들 때 이미 내용을 읽었고, 만약을 대비해 여벌로 써놓으면서도 읽었다. 그러니 오히려 왕보다 읽는 속도가 빠르고 발음도 더듬거리지 않고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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