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이계홍 역사소설 깃발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07>-제7장 비겁한 군주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07>-제7장 비겁한 군주

-조그만 적을 섬멸하고 어찌 첩서로 소식을 다 드릴 수 있사오리까마는, 저희 생각은 성상께옵서 호남을 염려하시는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는 작은 충성일 뿐입니다. 첩서를 바치는 것이 본의가 아니옵고, 모든 사람들의 재촉과 또한 감사(監司)께서 속히 전달하라는 명령 때문이옵니다. <‘장계’ 부분은 사단법인 충무공정충신유적현창사업회 간행 정환호 편저 ‘충무공 정충신 전기’ 56~58페이지 인용>

선조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요즘 명나라로 가는 일도 쉽게 풀리지 않고, 왕실 식구들과 조정 신료들을 데려가려면 배가 오십척 이상 필요했지만, 고작 네다섯 척만 보내준다고 하니, 속이 상할대로 상해 있었다. 그것은 들어오지 말라는 말과도 같았다. 그나마 그 배도 이제나 저제나 하는데 아직 오지 않아서 사람 속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탯줄 끊은 뒤 처음으로 도성을 빠져나와 산 설고 물 설고, 날씨마저 음산한 북녘 국경선에 와있으니 마음은 더욱 무겁고 위축되고, 남모르는 향수병까지 걸려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때 승전소식이 날아오다니,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권 장군의 안위는 어떠하냐.”

“지금 또 출정 준비를 하고 있사옵니다.”

“장한 일이로다. 그렇게 왜놈들을 까부숴야 내가 명으로 건너가는 데 차질이 없을 것이다.”

순간 정충신이 깜짝 놀랐다. 호남이 일어나서 영토를 회복하려는데 왕이 도망간다고?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는 것이라는 것은 나중 나온 말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왕이 없으면 조선도 없는 것 아닌가. 정충신이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아뢰었다.

“상감마마, 권 장군께옵서는 성상께서 명으로 가실 것이 아니라 도성으로 다시 돌아오시라는 건의 말씀이옵니다.”

“장계엔 그런 내용이 없지 않느냐.”

“직접 쓰시진 않았지만 호남을 지키고 병참선이 확보되고, 전력자산을 비축하게 되었으니 조국이 일어설 일이 남았으며, 그래서 패주할 이유가 없다는 진언이시옵니다. 성상께서 대궐로 복귀하셔서 종묘사직의 대통을 이으시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고, 또 성상의 용안이 백성의 얼굴이 되며, 나라의 기둥이 된다는 뜻이 장계의 행간엔 담겨있습니다.”

“너 몇 살이냐?”

갑작스럽게 선조가 물었다.

“열일곱이옵니다.”

“생각이 깊구나. 좋은 나이로다. 그래,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 나는 열다섯에 왕위에 올랐느니라.”

선조가 정충신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내 외로운 때에 너는 진정으로 과인을 생각하는 충신이로다.”

그래서 이름까지 충신인가, 하고 선조는 뚱딴지 같은 생각을 했지만, 사사로운 생각을 하는 것은 왕의 체통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여기고,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아 장계의 두루마리를 다시 펴들었다. 그가 스스로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말했다.

“치열했다는 이치전 상황을 좀더 상세히 말해보거라. 생각만 해도 힘이 솟는구나.”

그는 전쟁에 맛을 들인 장수처럼 생기를 찾고 있었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지금까지 줄곧 들어온 것이 연전연패 소식 뿐이었다. 나갔다 하면 도망가거나 항복을 하고, 일부는 투항해서 적의 안내자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불한당들이 대궐에 침입하여 불을 놓아 궁궐을 모조리 태웠다고 한다. 왜군보다 백성들이 더 날뛴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얼마나 분개했는지 모른다. 감히 백성들이 종묘사직의 권위에 도전한다? 그것들이 대궐을 짓밟아?

그런데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을을 점령한 왜의 주둔군 주장(主將)들이 목사 군수 현감을 발령내 행정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조선반도에 왕이 두 사람이 탄생한 셈이다. 새 고을 두령에게 백성들이 서로 접촉하고 아부하고, 이간질과 분열로 혼란이 거듭되고 있었다. 그는 왜도 야속하지만 백성들이 더 야속해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경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