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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08>-제7장 비겁한 군주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08>-제7장 비겁한 군주

“아, 그런 중에 전라도가 온전하다. 이건 신의 한수가 아닌가. 전 국토가 왜적의 점령하에 있는데, 한줄기 생수처럼 전라도가 온전하다. 일본군 중에서도 막강한 제6군사령부를 격퇴하고, 조선에 상륙한 20만 왜군을 섬멸할 근거를 마련하다니… 과인이 복이로다.”

호남이 적의 지배에서 벗어남으로써 군량미 공급과 병사 모집의 전력자산을 확보하게 되었다. 절망 뒤에 피는 꽃은 더 아름답다. 왕은 희망의 싹이 돋아나는 감격을 맛보고 있었다. 조정 대신들도 고무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또 그래도 명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과, 한양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 이 부딪칠 것이다. 우환이 겹친 상태에서는 이런 논쟁도 이제는 피곤하다. 하긴 그는 차력살인지계(借力殺人之計:남의 칼을 빌려 상대를 제거함)라는 통치철학으로 그동안 재미를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전의 일이고, 지금은 장계에 충실할 때다. 그는 서찰을 다시 들여다보며 말했다.

“천오백의 병사로 일만오천의 왜적을 격멸했다니, 종묘사직에 고할 일이로다. 세상에 없는 전공이로다. 권율 장군의 멸사봉공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다.”

그러면서 광주목사 권율을 전라도 도절제사로 현지임관시킨 것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래 그가 단행한 인사 중에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았다.

“권율 도절제사가 바로 제 장인이옵나이다, 전하.”

이항복이 말하자 선조가 이항복을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그런 것은 모른 척 하면 안되나?”

이항복은 속으로 뜨끔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물먹은 관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공교롭게도 제 장인이라서 한 말씀 올린 것이라기보다 주상 전하의 적재적소 인사배치가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일깨워드리려고 했을 뿐이옵니다. 시간에 딱 맞춘 관직 부여이옵니다.”

그 말을 무시하고 선조가 정충신에게 물었다.

“네가 직접 이처전투에 투입되었단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그래, 이치전투 장면을 생각하면 나도 아슬아슬하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박진감이 넘치는 전투다. 이치·웅치전 승리는 국난극복의 시작점 아니겠느냐.”

“그렇사옵니다. 정충신의 이치전투 승전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도강하실 문제를 재검토해보시는 것이 어떠신가 여쭈옵나이다.”

이항복이 간읍했다. 그는 왕의 의사를 따라 본래 도강파였지만 호남이 사수되고 있는 마당이라면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고 유연성을 보이고 있었다.

“도강하는 것을 검토해보자고?”

“그렇사옵니다, 전하.”

번연히 깨질 줄 알면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하는 이항복을 왕은 정면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는 연명과 보직에 혈안이 되어서 왕이 판단을 잘못해도 예예로 응답하는 다른 신료들과는 차이나는 급이었다. 그런 것이 미울 때도 있지만 사사롭지 않아서 신임했다. 파쟁이 횡행하는 사대부의 무질서 속에서도 초연하는 담대함과 왕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이 공사다망을 무릅쓰고 밤이나 낮이나 거처지를 찾아와 변함없이 충성을 보여주는 태도는 왕의 참모로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어려운 일도 쉽게 풀고, 낙천적이며, 자신감이 있는 꾀돌이 이항복을 곁에 두는 것은 오복 중 하나라고 선조는 여기고 있었다.

“내가 당신을 미워하는 건 아니라는 거 알고 있겠지?”

“미워하셔도 저의 충성은 땅끝까지 갈 것이옵니다.”

그들은 모처럼 밝게 웃고 정충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충신이 이치전투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경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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