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정복 대상이 아니라 도전이며 희망”
‘희망나눔 2018 김홍빈 안나푸르나 시민원정대’ 동행취재기(下)
‘꿈과 도전의 희망봉’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정상 오른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
장애인 세계 최초 8천m급 12개 봉 오르는 대기록 세워
14좌 완등 2개 봉 남아…18일 가셔브룸Ⅰ 등정차 출국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후만 되면 폭설·강풍
눈사태 위험 속 허리까지 빠지는 눈 헤치며 전진
여기가 정상인가 싶으면 또 다시 봉우리가…
수 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암벽구간 통과
너무 힘들어 그냥 내려가고 싶은 마음까지…
또 와야한다는 생각에 끝까지 가보자 오기 생겨
햇볕이 그리웠다…따뜻한 물 한잔도 생각났다
드디어 더 높은 봉우리가 안 보였다… 정상이다!”
 

안나푸르나
‘열 손가락 없는 불굴의 산악인’ 김홍빈(54) 대장이 지난 5월 13일 세계 제10위 고봉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천91m) 등정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사진은 눈 덮인 안나푸르나 모습. /시민원정대 나정희 대원 제공
김홍빈 대장이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셰르파와 함께 남도일보 깃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도전이며 희망입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김홍빈(54) 대장은 “산은 저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겸손할 때 비로소 저를 받아준다”며 “산을 오를 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고 소감을 말했다.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은 지난 5월 13일 험준하기로 악명 높은 세계 제10위 고봉(高峯)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천91m) 정상 등정에 성공, 장애인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천m급 12개 봉우리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다. 김 대장은 이제 히말라야 8천m급 14좌 완등까지 파키스탄의 가셔브룸Ⅰ(8천68m)과 브로드피크(8천47m) 2개봉만 남겨놓고 있다.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한계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는 오는 18일 가셔브룸Ⅰ 등정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김 대장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정상을 향해 ‘천번’을 시도하는 불굴의 산악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김 대장은 지난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천194m)를 등반하던 중 조난당해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8천m급 14좌에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다. 지난 1997년부터 세계 정상급 봉우리 등정 도전에 나선 김 대장은 2009년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데 이어 히말라야 8천m급 거봉들을 차례로 등정해 ‘희망 전도사’로 불린다.

멈추지 않는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꿈과 희망의 인간승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김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정 이야기를 들어보자.

4월 14일 시민원정대 전원이 베이스캠프에 무사히 도착했다. 몇몇 대원이 고소증에 힘들어 했지만 잘 극복해 고마웠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베이스캠프에서 첫 밤을 보내고 날이 밝자 25명의 시민원정대원이 하산길에 올라 썰물처럼 다 빠져나갔다. 베이스캠프가 허전하다. 손을 흔들며 대원들을 보냈지만 다 떠나고 나니 내 마음도 텅 빈듯 쓸쓸함이 느껴졌다.

▶고소적응훈련
16일 고소적응차 캠프1을 다녀왔다. 정오가 넘어서면서 구름이 서쪽에서부터 몰려와 잔뜩 흐리고 시야 확보가 안돼서 캠프1을 바라보고만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이틀을 쉬고 19일 4명의 셰르파들과 함께 캠프1~캠프2 루트작업을 하면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캠프2에 진출했다. 이날 처음으로 베이스캠프에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20일 캠프1~캠프2 중간에 있는 장비를 캠프2로 옮기고 나서 캠프3까지 루트작업 후 캠프2로 하산했다. 21일 캠프2 윗 지점에 눈사태가 발생해 전날 데포시켜 놓은 장비가 모두 유실됐다. 맥이 풀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베이스캠프로 전원 내려왔다.

22일부터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을 취하며 기상상태를 체크했다. 날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후만 되면 약속이나 한듯 눈이 내렸다. 그러다 밤이 되면 눈이 그치고 별이 초롱초롱했다. 저 멀리 큰 별똥별이 떨어졌다.

▶캠프 1~2 등정

26일부터는 폭설이 쏟아진다고 조벽래 후배가 알려왔다. 눈사태로 유실된 장비를 카트만두에서 보충했는데, 25일 가지고 온다던 포터는 눈이 빠지게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26일 정오쯤 조벽래 후배에게 기상 체크를 했는데 계속 눈이 내리는 똑 같은 날씨다. 타토파니에 있는 포터 사다에게 전화해 보충한 장비를 빨리 가져오라고 독촉했다.

27일 아침 따스한 햇볕이 베이스캠프를 녹여줬다. 높은 구름에 날씨가 좋다. 아침을 먹고나니 2명의 포터가 장비를 지고 올라왔다. 속으로는 반가웠지만 “왜 이제야 오냐?”고 꽥 소리를 질렀다. 저녁무렵 약간의 스노우샤워가 있었다.

28일 셰르파들이 루트작업을 빨리 할 수 있도록 키친보이 낙파와 함께 캠프1(5천50m)에 도착했다. 29일 하루는 캠프1에서 대기했다. 다음날 셰르파 니마와 함께 캠프2(5천500m)에 도착했다.

▶강풍·폭설에 1차 정상도전 실패

어느덧 5월이 됐다. 정상을 향해 계속 전진하다 어두워져 6천300m 지점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텐트를 쳤다. 다음날인 2일에는 폭설 때문에 고도 200m 밖에 오르지 못하고 6천500m 지점에 어렵사리 텐트를 쳤다. 3일에도 폭설이 쏟아졌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6천800m 지점에 도착했는데 거대한 아이스폴(얼음폭포)이 가로막았다. 날씨까지 바람이 불어대 위에서는 스노우샤워(소낙눈)가 쏟아졌다. 날은 저물고 텐트를 칠 만한 장소도 눈에 띄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아이스폴 안에 텐트를 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다음날에도 기상상태가 좋아지지 않고 눈사태 위험이 있어 전원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1차 정상 도전에 실패하고 베이스캠프에서 사흘을 쉬었다. 정상 부근에서 계속 강한 바람이 불어댔다.

▶14시간 사투 끝에 정상 등정 성공

7일 오후 위성전화에 문자 한통이 날아왔다. 조벽래 후배가 통화가 안된다며 보낸 메시지다. 12~13일 날씨가 좋다고 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D데이를 12,13일로 잡고 8일 오전 베이스 캠프를 출발해 캠프1에 도착했다. 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9일 캠프2에 도착할 때쯤 화이트아웃(강설과 산안개로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면서 시야를 상실하는 현상)에 캠프2 텐트를 찾기가 어려웠다. 밤새도록 눈이 내려 이튿날까지 꼼짝 못하고 캠프2에서 대기했다. 마음은 급한데 정말 날씨가 안 도와줘 초조했다.

11일 오전 7시 30분 날씨가 다소 좋아져 캠프3(6천500m)로 출발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눈사태가 나는 지역을 통과해야 한다. 제발 무사하길 바라면서 눈사태 지역으로 들어갔다.

12일 캠프4(7천50m)에 도착, 오후 9시 30분 정상 도전에 나섰다. 스노우샤워로 인해 안자일렌(등반자끼리 로프를 연결해 묶고 오르는 방법)을 하면서 출발했다. 베이스캠프의 불빛을 체크하면서 무전으로 우리 위치를 확인해왔지만 그마저도 보이질 않았다. 13일 오전 6~7시께 정상에 오를 계획이었는데 눈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바람에 속도를 낼 수 없어 늦어졌다.

13일 날이 밝아왔다. 발이 시려 계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걸었다. 햇볕이 그리웠다. 따뜻한 물 한잔도 생각났다. 걸음을 잠깐만 멈춰도 금세 졸음이 쏟아졌다. 바람 한점 없고 눈도 안 내렸다. 최상의 날씨다. 정상이 잡힐 듯하다가도 다시 암벽구간이 나타났다. 몇번이고 미끄러지며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저게 정상인가 싶으면 또 다시 봉우리가 이어졌다. 너무 힘들어 그냥 내려가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다시 또 와야한다는 생각에 날도 좋은데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로 한발한발 내딛었다. 드디어 더 이상 높은 봉우리가 보이지 않았다. 정상이다! 현지시간으로 13일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악천후를 뚫고 장장 14시간여 만에 등정을 이뤄냈다. 셰르파 4명과 함께 안나푸르나 정상 등정 스폰서 깃발들을 들고 사진촬영을 했다. 정상 바로 아래 바위 틈에 (사)김홍빈과 희망만들기 스카프를 두고 천천히 캠프4로 하산했다.

▶무사히 베이스캠프로…긴장 풀리며 온 몸이 녹아내렸다

14일 아침 일찍 캠프4를 출발해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밤 10시였다. 온 종일 눈을 맞으며 안나푸르나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간의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이 녹아내렸다.

15일 베이스캠프에서 하루 쉰 후 16일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정원주 단장께서 고생했다며 배려해줘 히말라야 8천m급 12좌를 하면서 처음으로 헬기를 타고 하산하는 행복감을 맛봤다.

 
 

이번 안나푸르나 정상 등정은 꼭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많은 분들이 성원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후원해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 중흥건설, 남도일보, 광주광역시장애인체육회, 광주장애인총연합회, 미르치과네트워크와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 많은 분들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김경태 기자 kkt@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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