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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항일의 섬' 완도 소안도

남도일보 연중기획

전남미래, 섬·바다에 달려있다

항일 독립운동가 89명 배출 ‘정의·의로운 섬’

온 가정 365일 태극기 펄럭 ‘나라사랑’실천

독립 유공자 순례 답사지 급부상…경관도 한몫
 

소안도 정면
‘편안히 살 만한 곳’이라는 소안도는 그리 편안한 삶이 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 전국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이를 기리는 소안항일운동 기념탑 전경. /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

<19>‘항일의 섬’완도 소안도

소안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17.8㎞ 가량 떨어진 바다에 있는 섬이다. 노화도, 보길도, 횡간도, 구도 등의 섬과 함께 소안군도를 이루는 남해의 청정해역에 위치해 있다. 전복, 다시마, 김의 원산지나 다름없는 섬이지만 담긴 역사를 알면 분위기는 자못 달라진다.

전국지방동시선거가 끝난 다음날인 14일 오전 11시, 화흥포항에서 출발하는 민국호에 몸을 싣고 소안도로 향했다.배를 타고 가는 길목에는 청정해역답게 전복, 다시마, 김, 미역 등의 양식장이 널따랗게 줄지어 있다. 이 곳 섬사람들의 생업을 짐작케 했다.

출발지인 완도 화흥포항에서 중간 기착지인 노화도 동천항을 거쳐 가는 민국호는 소완농협이 태극기 이미지를 형상화한 테마교통의 한 축을 이루는 선박이다. 대한, 민국, 만세호 등 3편이 하루 11차례, 1시간 간격으로 왕복 운항한다. 주로 소안도와 보길도 섬 주민들이 이용했으나 최근에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평일인 이날도 민국호에는 외지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배로 35분 달려 도착한 중간 기착지인 노화도는 보길도를 연결하는 연도교가 들어서 보길도 관광객들은 주로 이 곳에서 자동차를 이용한다고 한다. 달라진 섬 길을 실감케 한다. 소안도 역시 앞으로 구도와 연도교가 설치될 예정이어서 섬을 찾는 사람들의 불편은 크게 덜 전망이다. 현재 노화도 동천항에서 구도까지는 이미 연도교가 만들어져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
 

소완도 표지석
소안도 항 입구에 설치된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라고 적힌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중간 기착지인 노화도 동천항에서 주민들과 관광객 일부를 내려놓고 15분 정도 더 운항한 배는 드디어 소안도항에 도착했다. 바람이 다소곳 하던 육지와 달리 소안도에는 강한 바람이 불어닥쳐 그동안 주민들의 평탄지 않은 삶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했다. 소안도항 입구, 매표소 가는 길목에는 소안배달청년회 명의로 세워진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라는 표지석이 낯선 이방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소안도항 입구 표지석 눈길

선착장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 3~4m 간격으로 세운 깃대 위에는 강한 바람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양쪽 도로를 따라 흐드러지게 핀 금계국도 인상적이었다. 들어선 섬 마을 어디로 눈을 돌려도 온통 태극기 투성이다. 항 입구 표지석에 담긴 문구를 어느정도 짐작케 했다. 1천350가구 섬에 내건 태극기 수는 줄잡아 1천500여개에 이른다. 비단 학교, 관공서만이 아니다. 집집이 마다 깃대를 세우고 ‘나라사랑’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소안도 태극기는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펄럭인다. 그래서 소안도를 태극기 섬이라고 부른다.

거리에 펄럭이는 태극기 모습
소안도 들어가는 도로에 펄럭이는 태극기 전경.

 

 


‘편안히 살 만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소안도(所安島).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소안도는 그리 편안하지 못했다. 이 조그만 섬이 항일 구국의 횃불을 환하게 들어올린 탓이다. 정부 건국 훈장을 받은 20명을 포함해 89명의 항일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소안도가 ‘항일의 섬, 독립항쟁의 섬’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소안도는 민족의 앞날을 밝힌 등대 역할을 한 셈이다. 함경도 북청과 부산 동래와 함께 독립운동이 가장 강성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소안도는 작은 외딴 섬에 불과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전국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격렬한 항일운동을 펼쳤던 의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출가 어업인 왜인 거주지 방화사건(1886년)을 비롯 동학농민운동 참여(1894년), 당사도 등대 습격 의병 의거 사건(1909년), 1909년부터 13년간 전개된 토지소유권 소송 승리, 사립 소안학교 설립(1921년) 등을 통해 조국 광복에 힘을 쏟았다.

서울 중앙학교를 졸업한 소안도 출신 송내호(宋乃浩·1895~1928년)선생은 항일운동의 중심에 섰다. 서울 탑골 공원 3·1독립만세 운동에 이어 보름 후 열린 완도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소안도에서는 이날을 기려 해마다 3월 15일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갖고 있다. 송내호는 섬 주민 교육을 위해 주민 주도로 설립된 사립 소안학교(처음엔 중화학원) 교사로 재직하면서 민족 교육을 통해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소안학교 복원 교육 공간 활용

이같은 숭고한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출범한 (사)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는 이듬해인 2003년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을 건립했으며 2005년에는 소안 항일기념탑을 상징물로 세웠다. 바로 옆에는 소안학교를 그대로 복원(2005년)해 주민이 이용하는 작은도서관과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태극기가 온 섬에 휘날린 것은 이대욱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장의 역할이 컸다. 뒤늦게 소안도 역사를 알게 된 이 회장은 직장 은퇴 뒤 고향으로 내려왔다. 2012년 처음으로 북암리 마을 30가구부터 시작한 이래 점차 태극기를 다는 집이 늘어갔다. 온 마을이 태극기를 단 2013년 12월, ‘태극기 섬 선포식’을 열고 부터다.

이대욱 회장은 “겨례의 섬이요 태극기의 섬인 소안도는 지금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전 국민이 찾아오는 독립유공자 순례 답사지로 거듭나고 있다”면서 “특히 중·고교생들의 수학여행지로 정착돼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살피는 기회가 제공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한편 전남도는 지난 2015년부터 민선6기 브랜드 시책인 ‘가고 싶은 섬’사업을 진행중에 있다. 마을 숙박시설을 리모델링하고 마을식당, 섬길 조성 등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관광객 맞이에 분주하다. /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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