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역박람회

어떤 무역박람회

<문상화 광주대학교 외국어학부 교수>
 

인도에 갔다. 한국과 인도의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뭄바이에 마련된 무역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개막에 앞서 열린 기념식에서, 이제 양국 간 교역이 점차 그 규모가 커져가고 있다고 부지사가 축사를 했다. 그리고 부지사의 축사는 유창한 통역을 통해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매끈한 통역은 부지사의 문장 하나 하나를 깔끔하게 영어로 옮겨서 듣는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주지하는 것처럼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를 오래 경험한 국가이다. 그 기간 동안 영국의 문화가 인도문화 속으로 스며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크리켓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스포츠이다. 언뜻 보기에 투수가 타자를 향해 공을 던지는 것 같기 때문에 ‘야구 중계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크리켓은 야구와는 전혀 다른, 영국 사람들이 축구만큼이나 열광하는 영국의 국민스포츠이다.

인도는 다양한 언어가 공존해왔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편리함을 위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선택해 오고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인도가 영어를 공용어로 선택했기 때문에 인도에 가면 영어로 쉽게 의사소통을 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어는 스무 개가 넘는 공용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 많은 수의 인도인들은 영어보다는 힌두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영어의 사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외국인이 힌두어보다는 영어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도인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각종 행사장이나 호텔, 공항, 식당 같은데서 영어가 어렵지 않게 들린다. 인도인들이 보기에 외국인과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문제는 영어의 사용에 있다.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인도에서 사용되는 영어는 미국식이 아닌 영국식 영어이다. 흔히 버터를 잔뜩 바른 것 같은 발음이 아니라 건조하고 딱딱한 발음이 통용되는 것이다. 워러(water)가 아니라 워터이고, 런던(London)이 아니라 론돈이며, 1층(first floor)이 아니라 지상층(ground floor)이 사용되는 것이다. 영국식 발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버터발음이 잔뜩 낀 미국식 영어를 듣는 인도사람들의 느낌은 어떨까? 마치 전라도 사람들을 위한 행사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듣는 것처럼 기분이 불편할 것이다.

우리는 유창한 미국식 영어라면 어디든지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멋진 발음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미국식 영어는 실은 영국식 영어에 비해 세련미가 덜하다. 영국영어가 유럽의 다른 언어들과 섞이고 경쟁하면서 발전해 오는 동안, 미국영어는 북미대륙에서 고립된 상태로 유지되어 타 언어를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미국식 영어라면 어디에서든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산이다.

인도에 갔으면 인도사람들이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했어야 했다. 의사소통의 문제 때문에 힌두어를 쓸 수 없었다면, 적어도 통역자는 영국식 영어를 쓰는 사람을 선택해서 통역을 맡겨야 했다. 우리나라는 인재가 많은 나라이다.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망가진 상태에서 이만큼 발전을 했다면 우리가 가진 것이 인적자원 외에 특별한 것이 있었겠는가? 찾으려고 든다면 우리나라의 산하에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들이 보석처럼 박혀있는 것을 알고 행복해 할 것이다.

이제 지방선거가 끝나고 국민에 의해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희망찬 포부로 새로운 임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공약대로 일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그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고언은 자신이 추진하려는 일이 누가 원하는 것인가를 먼저 물어달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인지, 주민이 원하는 것인지, 또 주민이 원한다면 몇 퍼센트의 주민이 원하는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해 달라는 것이다. “주민이 원한다”는 두리뭉실한 정책은 주민들의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을 그 분들이 언제나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