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

초대 중앙정보부장,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3당합당, '김대중·김종필 DJP 연합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三金)시대'를 이끌었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오늘(23일) 오전 노환으로 향년 92세 나이로 별세했다.

김 전 총리는 오늘 오전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119 구급대에 의해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의 한 축인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가 쪽 조카사위 뻘이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1948년 육군사관학교를 제 8기로 졸업했다.

1958년 육군본부 정보 참모부 기획과장으로 근무하면서 1961년 5·16 군사정변에 핵심 인물로 참여했다.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1963년에는 민주공화당(공화당) 국회의원으로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떠난 데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올랐다.

이후 민주공화당 부총재를 거쳐 1971년에는 제11대 국무총리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80년 전두환 등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한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1990년 2월 민주정의당ㆍ통일민주당ㆍ신 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출범한 민주자유당의 대표 위원이 됐다.

민자당에 있다가 탈당하여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총재로 취임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자민련 대표로 대권에 도전했다. 당시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김대중(DJ)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DJ 정부에서는 제31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그러나 내각제 파동과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공동정권 수장 사이의 앙금은 결국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및 공조파기로 이어졌다.

16대 국회의원까지 총 9선(6·7·8·9·10·13·14·15·16)으로 역대 최다선 의원이었던 그는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시도했으나, 자신의 10선 도전 실패와 함께 고작 4명의 의원만 배출하는 참패를 당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달인 등 그에게 따라붙는 여러 별칭이 이를 말해준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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