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23>-제7장 비겁한 군주

선조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기분 나쁘다는 투가 역력했다. 행재소가 허술하고, 용상에 앉아야 할 신분이 마루 바닥에 짚자리를 깔고 주저앉아 있는데다, 곤룡포는 물론 옥대도 갖추지 않고, 익선관과 목화(木靴)도 착용하지 않아서 도무지 왕같지 않게 비쳤기 때문에 그 자신 생각해도 스스로가 한심해 보였다. 그래서 이 소년도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인가.

왕의 모습은 한없이 지치고 늙어보였다. 나이 사십인데 얼굴은 육십 노인처럼 주름살이 깊고, 눈썹과 눈썹 사이 미간엔 도성의 뒷골목 패거리 두목처럼 내천(川) 자가 뚜렷하게 그어져 있었다.

용맹을 떨치는 명장을 잡아다가 참수했으니 쓸개달린 인간이라면 마음이 편치 못했을 것이다. 신각의 처형 소식을 소년을 통해 다시 들으니 왕은 한편으로 창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화가 치미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자기 변호가 없을 수 없다. 체통을 살리기 위해서도 그것은 필요했다.

“그런 자는 없는 것이 낫다. 군인이란, 애초에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명령에 따라 생명을 거두는 직업인즉, 근무지를 이탈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고, 용납되어서도 안된다. 소년은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입밖에 내지 말지어다. 혀가 뽑힐 것이다.”

왕은 버럭 역정을 냈다.

“조선반도는 모든 산하가 근무지고 작전지역인뎁쇼? 군인은 어디서나 전쟁을 해야지요.”

하고 말하려다 정충신은 이항복의 부라라는 눈빛에 입을 닫고 몸을 움추렸다. 왕이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했다.

“어여튼지간에 권 장군의 장계는 과인에게 힘을 주도다. 과인이 강을 건너지 말고 우리 국토를 지키면서 백성들을 다스리라, 그런 뜻 아닌가.”

“그렇사옵니다, 옛말에 참 주군은 백성을 버리지 않는 우리의 이웃이라 하였사옵니다. 상감마마. 요동 망명을 거두시는 일은 참으로 지당하신 결정이시옵니다.”

“내가 언제 망명을 거둔다고 했나? 건너 짚지 말라. 도승지도 가능하다면 빨리 강을 건너자고 주창하지 않았던가.”

“전란의 격변기엔 상황에 따라 정책이 변경되는 것이 원칙이옵니다. 전선(戰線)은 고정된 것이 아닌 것이 원칙이옵지요. 지금 호남지방에서 권율 장군과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 왜군의 뒤를 추격하니 나라를 되찾을 날이 멀지 않았사옵니다. 해상은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있사옵니다.”

“원균이 지키는 것이 아니고?”

“두 장수가 바다를 굳건히 지키고 있사옵니다.”

“원균이 도망쳤다는데?”

도대체 왕은 무슨 말을 하자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왜란이 나자 지방의 수령들은 다투어 도주하고, 백성들은 산간으로 피난해 영남의 성읍이 빈 상황이었다. 조선 수군의 요충인 경상좌수영의 군사도 수사 박홍 이하 장병들이 도주해 싸워보지도 못한 채 궤멸되었으며, 거제에 진을 친 경상우수영의 장병들도 흩어져 휘하에는 약간의 장병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때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요청하고, 흩어진 군사를 수습했다. 마침내 이순신의 전라도 원병이 들어오자 합세하여 옥포·당포에서 연전연승했다. 그러나 포상 과정에서 이순신과 공로 다툼이 생겨서 불화가 났다. 이때 원균은 며칠씩 행방을 감추었는데, 왕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 자는 툭하면 도망친단 말이야. 그래도 인간미는 있는 인간이야.”

“여하간에 호남 관·의병군이 반격 태세를 갖추니 성상께서 이 땅에 계시는 것만으로 병사들 사기를 올리고, 전선을 튼튼히 하며, 백성을 안도케 하는 일이옵니다. 만리장성보다 더 든든한 병풍이 되는 것이옵니다.”

“그럼 건너지 말자고? 뭘 그렇게 복잡하게 말하누? 난 배만 오면 떠날 거야.”

왕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어린 소년에게 보여주는 것이 민망했던지 이항복이 정충신을 돌아보고 말했다.

“너는 잠시 나가 있거라.”

정충신이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정중히 일어섰다가 엎드려 예를 취한 뒤, 다시 일어서서 구부린 자세로 뒷걸음질로 행재소의 어전을 물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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