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이계홍 역사소설 깃발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28>-제8장 의주행재소, 회한의 땅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28>-제8장 의주행재소, 회한의 땅

정충신이 궁금한 나머지 정윤에게 물었다.

“아버지, 장차 통역자가 되고 싶어요. 저는 왜어, 중국어를 하는 것이 흥미 있습니다. 그런데 통역자나 의원(醫員)이 왜 중인(中人)이 되어야 하나요. 사대부 양반들보다 더 똑똑하고 명철하고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많은데 그들보다 못한 중인이라니요. 상민은 또 뭡니까.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군역을 치르고, 훌륭한 나라의 기둥들인데 미나리농사를 짓는다고, 물고기를 잡는다고, 가축을 잡는다고 상민, 또는 천민이라니요. 그들은 밥 안먹고, 고기를 안먹나요? 누구 때문에 배불리 먹고 살지요?”

“광대, 무당, 대장장이, 목수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고달픈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즐겁게 해주고, 관병들에게는 무기를 만들어주고, 관아 청사와 세도가의 집을 지어주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데, 우마로 취급하도다. 대대로 이어져 왔다고 생각없이 받아들이는데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왜라는 나라는 칼 휘두르고 예의범절이라곤 없는 불상놈들이지만, 신분계급이 우리와는 달리 전문직종을 우대하고 있다. 누대에 걸쳐 솥과 삽, 호미 만드는 대장장이, 떡을 만드는 여인네, 소잡는 백정이라도 전문기술자로 우대하고 있다. 그들이 우대받으니 더좋은 물건을 생산하고, 더 좋은 것 발명하고, 더 좋은 개척지를 열어가고 있다. 사랑방에 양반다리 꼬고 앉아서 주구장창 공자왈 맹자왈 왼다고 해서 떡이 나오느냐 밥이 나오느냐. 너는 이 점 명심하여서 관아에서 일보는 가운데서도 생산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키우거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취하되 쓸데없는 공리공론을 배척하여라. 사서삼경 달달 외우는 바보가 되지 말거라. 복은 근면에서 나오고 덕은 겸손에서 나오느니라. 멋모르고 군림하는 어른이 실은 인생을 헛사는 불쌍한 축생이다. 썩고 고여있는 자가 바로 천민이다. 대대로 종으로 살아온 종이 천민이 아니다. 그들을 극복하는 길은 그들보다 나은 학문을 닦고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정충신이 이런 생각을 되새기면서 하늘을 우러르자 정지 장군 할아버지가 다시 나타났다. 정충신이 평소의 생각을 말했다.

“불평등의 세상을 바꿀 수 없나요?”

-그것을 개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 조선조처럼 고문기술이 발달한 나라는 세상에 없기 때문이니라. 악질적인 고문 기술로 모순을 극복하려는 백성을 공포스럽게 묶고,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사용하였도다. 고문 기술이 잔혹하니 어느 누구도 대들 엄두를 내지 못했지. 그중 천민, 노비 따위는 언제나 고문의 실험 도구가 되었다.

“그래도 인본의 예를 숭상하는 미풍이 있잖습니까.”

-사람 죽이는 예법이 예법이냐. 그것은 차별을 정당화한 통치술의 하나일 뿐이니라.

“할아버지가 사셨던 여말(麗末)에도 노비제도가 있었고 예법이 있었잖습니까요?”

-고려대에도 노비가 있었지. 그러나 조선조처럼 가혹하지 않았고, 숫자도 많지 않았다. 노비들 신분이동도 유연했지. 그런데 조선은 자자손손 신분이 세습되었다. 반면에 돈 주면 면천(免賤)했다. 그렇게 썩을대로 썩었다. 억울하다고 반발하면 벌레처럼 잡아 죽였다. 애초에 무서워서 대들지 못하게 공포감을 주었고, 그것이 오늘에 이르렀으니 국가 동력이 살아나겠느냐?

“왜나 중국도 노예제도가 있었잖아요?“

-아까 말하지 않았더냐. 그 나라는 돈받고 일하는 머슴이 대부분이고, 조선과 같은 노비제도는 없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먼 미지의 나라 로마라는 땅도 전쟁 포로나 다른 민족을 끌고 와서 노예로 부렸지, 조선조처럼 같은 백성을 노비로 부리지는 않았다. 동족을 축생처럼 부려먹고, 임금 한푼 안주었으니 그게 나라 꼴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정지 장군은 하늘에서 계속 정충신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평소 정충신이 고민하던 것들에 대한 답이었다. 정충신은 평소에 늘 이런 관습과 관례 따위를 이상하게 생각해왔다. 하늘 아래 똑같은 사람인데 왜 누구는 양반귀족이고, 누구는 상놈인가. 왜 이렇게 세상이 나뉘고 불공평한가…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경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