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재임 중 백두산에 서길 바라며

<김성식 조선이공대학교 교수>

사람들은 그 영혼이 고독할 때 산으로 간다. 그리고 산을 다녀온 사람들은 자신의 고독한 영혼을 치유 받고 돌아온다. 숲 속을 걸을 때 온몸을 감싸는‘피톤치드’때문이라고 한다. 피톤치드의 기능 중 하나가 우리의 정신을 보다 맑고 이성적으로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독일에 철학자가 많은 것은 숲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하는 것”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퇴임 후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할 수 있는 여행권 한 장”을 부탁했던 말이 기억에 남았다. 물론 그 말의 뜻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백두산’이라는 장소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표상을 느끼고 싶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백두산은 우리 역사와 더불어 겨레의 숨결을 간직한 산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정신적 고향일 뿐만 아니라 신앙으로까지 여겨지는 성산(聖山)이다. 우리 선조들은 백두산을 우리나라 땅이 이루어진 근본으로 여겨왔으며, 민족자주 의식이 되살아난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겨레의 가슴속에 더욱 깊이 아로새겨지다가, 식민지 시대에는 민족해방의 등불이 되었으며, 분단시대를 맞아서는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말처럼 민족통일의 구심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백두산은 이처럼 정신사적 관점에서 우리 민족의 시발점이자, 역사의 출발점이다. 백두산으로부터 우리는 민족을 형성하였으며, 문화를 창조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백두산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하나의 신화적 원형이다. 이 원형이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고유하게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백두산은 우리 민족이 이룩하여 온 문화의 키워드가 되는 것이다.

오래 전 중국의 연변과 흑룡강성, 요녕성을 찾아 그 일대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을 상대로 그들이 갖고 있는 백두산에 대한 의미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백두산을 신(神) 그 자체일 뿐 아니라 동시에 신으로 통하는 성역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신적 영웅들의 원천지로서 민족과 국가의 시원지로 인식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꿈꾸고 있는 낙원으로서 불사의 힘과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생명의 산으로 여기며 생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백두산은 생명의 원천이며 신앙의 대상 그 자체였다.

때문에 그들은 백두산에 오르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밥을 지어 제사를 지내기도 하며 산에 올라서는 큰 소리로 떠들거나 소리 내어 웃지도 않고, 신성한 산을 더럽힐 수 없다 하여 자신이 배설한 일체의 오물을 준비해간 그릇에 담아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백두산은 발해가 멸망한 이후 우리 국토에서 사라졌다가 조선조 세종 때 김종서가 육진을 개척하면서 다시 우리의 국경으로 들어온 후 20세기에 들어와서 일제 침략기에 민족의식이 고취되면서 단군신앙이 강화되고, 이에 따라 백두산에 대한 숭앙의식도 고조되어 신앙의 경지로까지 대하게 되었다. 특히 국치를 당해 떠돌아야 했던 우리 민족에게는 백두산이야말로 조국을 의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물이었고 백두산 주변에 산다는 것 자체가 고국을 떠나 산다는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매체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백두산을 퇴임 후 오르기 보다는 재임 중 오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백두산에 오르게 되는 날 장군봉에 서서 김종서의 호기가를 되새겨 보길 바란다. 호기가는 당시 조정의 군신들이 국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왕위나 노리고 있는 한심한 상황에 울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무부(武夫)의 호탕한 기상을 읊은 내용으로 “백두산에 기를 꽂고 두만강에 말을 씻기니 / 썩은 저 선비야야 우리 아니 사나이냐 / 어떻다 능연각 위에 뉘 얼굴을 그릴꼬”란 시조다.

민족의 기상이 서린 백두산에 승리의 기를 꽂고 그 곳에 연원을 둔 두만강에 말을 씻기겠다고 했다. 백두산에 기를 꽂음으로써 북정의 중심에 백두산이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이는 여진족을 치고 육진을 열어 옛 땅 만주를 회복하겠다는 웅지를 직설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악한 이들이 더 이상 준동하거나 승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며, 선한 사람들이 소름끼치는 침묵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다. 백두산에서 소리쳐 외치는 그 기상을 보고 싶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