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누가 있어요!”

<문상화 광주대학교 외국어학부 교수>

“교수님, 여기 여자화장실인데 남자가 들어왔어요.”

이곳은 마콤(Macomb)이라는 미국 일리노이(Illinois) 주의 작은 시골마을로, 서부일리노이대학(West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진행되는 하절기 어학연수프로그램 때문에 학생과 함께 기숙사에서 머무는 중이다. 학생들은 8층에, 나는 2층에 있기 때문에 수시로 접촉할 수 없어서 답답한 차에, 한밤중에 날라 온 문자메시지는 시차의 피곤함을 한방에 지우기에 충분하다. 서둘러 학생들이 머무르는 8층으로 올라가 상황을 파악한다.

“제가 사워를 하고 막 나오는데 미국 남자학생 둘이 들어오더라구요. 너무 놀래서 가만히 숨어 있다가 뛰쳐나왔어요. 같은 방 친구한테도 조심하라고 말했어요.”

당장 관리자에게 연락해서 같은 층의 남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고, 여자화장실에 “남학생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장을 붙였다.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 나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미국 남학생들의 치기(稚氣)쯤으로 여기고 내 방으로 내려왔다.

“교수님, 어떤 미국 남자애 둘이 화장실에 들어왔어요.”

다음날 밤, 비슷한 시간에 다급하게 보내온 문자는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켰다. 기숙사의 8층 담당은 물론, 총괄 매니저, 어학연수생 담당직원, 여학생 가이드 그리고 경찰이 출동했다. 우리 여학생들을 모아서 상황설명을 들은 다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놀랬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학생들이 여자화장실에 일부러 들어간 것은 분명히 규칙을 어긴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들을 학내 사법기관에 기소해서 처벌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에 있던 여학생들이 사인을 한다면, 그들을 찾아내서 오늘밤 학내 경찰서에 구류할 수도 있고, 그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강력하고 분명한 경고를 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식을 원하십니까?”

구류니 기소니 하는 무시무시한 표현이 부담스러운 우리 여학생들은 경찰이 두 번째 방식으로 처리해 주기를 원했다. 그러자 2미터 쯤 되는 거구에다가 권총과 수갑으로 무장한 경찰은 남학생 방을 돌아다니며 방문을 부술 듯이 두드려서는 한 곳에 모았다. 남학생들은 여름방학 동안에 합숙훈련을 위해 기숙사에 머무르는 미식축구선수들로 하나같이 덩치가 집채만한 녀석들이었다. 경찰의 경고는 단호했다

“너희들 중에 여학생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놈들이 있어. 어제 문 앞에 경고도 붙이고, 너희들 코치를 통해서 주의를 주었는데도 고쳐지지가 않았어. 분명히 경고하는데 한번만 더 그런 일을 하면 즉시 체포해서 구류하고, 축구부 장학금을 취소 시킬거야.

생각해봐. 너희 여동생이 샤워하는데 어떤 남자 놈이 불쑥 들어온다면 좋겠어?

여자화장실에 들락거리는 놈이 누군지 알지만 또 다른 놈이 그럴까봐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거야. 한번만 더 이런 일이 일어나면 대가를 호되게 치를 줄 알아, 알았어?“

경찰의 경고는 위협적이었고, 15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녀석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꿈벅거리며 듣다가 자기들 방으로 돌아갔다.

경찰의 대처가 처음부터 피해자의 편에서 그들의 권리를 알려주고, 보호하려는 태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건의 상황을 파악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한 다음, 철저하게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태도는 미국의 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자국학생들의 장난으로 처리하고, “그럴 수 있는 일이니까, 너희들이 이해하라”라는 식으로 가해자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의견을 먼저 듣고 원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겠다”는 말로 피해자 편에 서는 것은 감동이었다.

상황이 종료된 후 내게 악수를 청하는 그 경찰을 보면서 우리 여학생 중 하나가 말했다.

“교수님, 미국 경찰 멋있어요. 덩치도 커서 믿음직하구요.”

“그렇지?” 내가 말하는 순간, 문득 우리나라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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