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 남도일보 주필의 ‘무등을 바라보며’

‘구름위의 산책’과 ‘존윅’ 그리고 기자의 글

기자가 젊었던 시절,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는 ‘구름위의 산책’(A Walk in the Clouds)이라는 영화다. 1995년에 만들어진 영화니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고전’(古典)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풍경의 멕시코 농촌과 포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와 아이타나 산체즈-기욘(Aitana Sanchez-Gijon)이 남녀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이 영화에서는 명배우 안소니 퀸과 지안카를로 지아니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기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폴 서튼 役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가와 빅토리아 役의 아이타나 산체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사랑을 일궈낸 두 주인공은 아름다웠다. 화면은 서정적이었고 음악 또한 흥겨웠다. 큰 통에 포도를 쏟아부어놓고 모두들 함께 들어가 맨발로 밟으며 포도주를 담그는 장면, 춤과 음악, 그리고 웃음소리…참으로 좋았다. 영화가 주는 궁극적 메시지는 조건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사랑과 희망이었다.

지금까지도 이 영화는 기자에게 ‘No 1’이다. 자연 키아누 리부스라는 영화배우도 좋아하게 됐다. 키아노 리부스는 오락영화 ‘스피드’를 통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매트릭스 시리즈로 스타덤에 올랐다. 2005년 콘스탄틴에 출연했지만 이후 10년 동안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다. 슬럼프에 빠져있던 키아누 리부스를 부활시킨 것은 2014년에 개봉된 영화 ‘존윅’(John Wick)이다. ‘존윅 2’는 지난해에 개봉됐고 ‘존윅 3’은 내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존윅 시리즈는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영화다. 무표정한 존윅이 벌이는 복수극은 상상을 초월한다.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렇지만 존윅의 폭력은 시비의 대상이다. 법을 초월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관객들은 그래서, 더 열광하는지 모른다. 그 배경에는 ‘법은 가진 자와 배운 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마련해놓은 장치라는 집단적 심리적 저항이 자리하고 있다. ‘법 무시, 상식무시’의 ‘존윅 표 액션’에 열광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구름위의 산책’ 마지막 장면은 불에 모두 타버린 포도밭에서 키아누 리부스가 불길에서 살아남은 한그루의 포도나무를 발견하는 것이다. 포도원의 화재는 갈등관계에 있던 여주인공의 연인과 아버지, 두 남자가 화해하는 계기가 된다. 여인의 아버지는 재산을 잃었지만 자신의 가업을 이어줄 수 있는 성실한 사위를 얻게 된다. 구름위의 산책은 러브스토리 영화다. 그러나 휴먼영화이기도 하다. 용서와 화해, 회복이 감동을 안겨준다.

구름위의 산책에서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이었던 키아누 리부스가 전사(戰士,매트릭스)를 거쳐 복수의 화신(존윅)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삶에 대한 순수와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던 우리의 ‘젊은 날의 초상(肖像)’은 온데 간 데가 없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상당부분 미움으로 변해버렸다. 사람을 사랑하는 대신, 지위와 명예를 더 사랑하고 있다.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해 상대에 대한 멸시도 서슴지 않고 있다.

영화 ‘구름위의 산책’을 처음 볼 때 기자의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그 후로 23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기자의 나이가 얼추 60대를 향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0대 중반, 그 나이 때의 기자는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을 좋아했다. 욕심내지 않고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폴 서튼이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희망을 찾는 모습을 보며 기자는 ‘행복은 내 곁의 사소한 일상에 있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을 겸손히 대하려 애썼다.

그런데 문득, 요즈음 기자가 ‘존윅’의 모습을 닮아있음을 깨닫는다. 어제 저녁 전화 한통을 받았다. 기자가 쓴 글과 관련이 있는 분이었다. 그 분은 “그렇게 긁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변했다. 기자는 발끈했다. “긁다뇨? 글 쓰는 것을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됩니까?” 그분은 그 표현이 과했다고 여겼는지 곧 사과했다. 그러나 뒤이어 “다음에는 여러 가지를 헤아려서 글을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해왔다. 통화는 짧게 끝났다. 그러나 여운은 길었다.

기자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 분의 말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래서 최근에 썼던 글들을 일부러 찾아 읽었다. 그러고 보니, 지나친 면박이 있는 글들이 많았다. 너무 직설적이어서 포용과 너그러움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존윅 영화처럼 치고받는 것은 순간적으로 재미야 있겠지만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래도 ‘구름위의 산책’을 몇 번 더 봐야 할 듯싶다. 그러면 마음과 글이 좀 더 따뜻해지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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