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정용식 남도일보 상무>

‘니가 가라 하와이’

9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아 각종패러디, 후속작까지 나왔던 조폭영화 ‘친구’. 중년남성들에게는 또 다른 기억을 끄집어낸 히트작이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선생님(김광규)의 질문과 “건달 입니다”라는 준석의 답변에 손목시계 풀고 사정 없이 뺨을 때리는 장면 또한 명장면(?)중 하나였다. 그때는 그랬다. 초등 6학년때다. 그나마 여유있던 7명 친구의 담임선생님은 과외라는 명목으로 시험문제를 알려줬고 그들에게 졸업 때 우등상을 쥐여 주는걸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초등 졸업식조차 먹고 사는 일 때문에 못 오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아니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가 성적과 연결되어 있음을 그렇게 알아버렸다. 괜시리 담임선생 닮은 배가 나온 뚱뚱한 사람들을 한동안 혐오까지 했었다.

학교는 죽었다.

젊은시절 브라질 출신 프레이리(Paulo Freire)의 ‘페다고지’와 교육학자 라이머(Everett? W. Reimer)의 ‘학교는 죽었다’ 를 밑줄 치며 읽었다. 억압 속에 해방을 목말라했던 시기에 간혹 열변을 토하는데 이런 잡지식이 이용되기도 했지만 지금 남아있는 기억이라곤 자극적인 책 제목과 ‘의미’에 골몰했던 프락시스(Praxis: 이론이 겸비된 실천활동)란 생경한 단어 등이다. 학생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지식 축적의 대상이 되는 교육, 현대 교육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어떻게 비인간화시키는가? 등 학교의 존재 이유와 존재 방식 등에 대한 가냘픈 기억뿐이다.

물질 만능의 불평등 사회라지만 그나마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학교현장마저 ‘돈’이 만물의 척도가 됐다. 결과만을 중시하기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해진 규정을 어겨서라도 성취해야 하는 상황을 학교현장에서 민낯 그대로 보게됐다. 도덕이란 과목을 가르침에도 일등이 되기 위해서 그런 도덕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린다. 광주의 D고에서의 시험지 유출사건을 지켜보는 내내 30여년도 훨씬 전 엄혹한 시절에 봤던 책 제목들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2년전 학생부를 관리해주고 무단 수정에 성적까지 조작해준 광주 S여고 사건과 의사부모가 아들을 의대 보내려고 학교를 통해 시험지를 빼돌린 D고 사건은 단지 입시성적에 모든 것을 내던진 일부 사립학교나, 일부 부유층의 빗나간 자식사랑으로만 치부하기엔 영 개운치 않다.

TV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을 통해 유명세를 탄 건축가가 며칠전 강연에서 ‘대한민국에선 감옥보다 못한 것이 학교다’ 라며 전체주의, 획일성으로 뭉친 학교, 복지부동하고 바뀌지 않는 교육부 공무원에 대해 아쉬움과 비판을 쏟아냈다. 고전이 돼버린 책의 주장이나 유명건축사의 강연내용의 옳고 그름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권 몰락의 정점을 찍은 최순실 딸의 ‘부모의 빽과 돈도 실력이다’라는 발언이 자꾸 오버랩 되고 있을 뿐이다.

누가 청춘들에게 노력을 운운할 수 있을까?

학교만은 썩어 선 안되고 우리 사회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청정지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학벌 지상주의 사회에서 사학이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거나 정부 또한 이를 방조하고 은폐하는 한통속이라는 비판이 있어도 대학입시는 공평할 것이라는,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바늘구멍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어찌 보면 빽 없고 연줄 없는 청년들의 마지막 남은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대학에 가도 등록금과 생활비 때문에 최저임금 알바자리 전전하며 삼각김밥, 고시촌 컵밥에 의존하며 생활해 가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어도 말이다.

광주는 반골도시, 손가락질에도 민주와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자부심속에 살아왔다. 그런데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을 접하며 상처받고 있는 애꿎은 학생들의 고통과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 할지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서글프게 한다.

대학들로부터 광주지역 학생들이 의구심어린 눈빛을 받아야 했던 악몽이 재현될까 두렵고, 열심히 노력한 학생들이 겪어내야 할 학교와 사회에 대한 의심과 불신, 상실감이 트라우마처럼 남을 고통이 두려운 것이다.

‘우리나라 사학전체의 적폐’ 니 ‘입시체계의 병폐’이니 하면서 광주교육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체계와 교육계에 대한 일대 개혁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요망도 멀리서나마 들린다.

다시 되물어 본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묻는자의 의도와 답해야 하는자의 고통이 아스팔트 위 뜨거운 열기와 함께 그대로 전달되는 날들이다. ‘학교는 가장 강고한 공공재’ 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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