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35> 제8장 의주행재소, 회한의 땅

“듣기만 해도 시원하다. 그런데 정충신 네가 어떻게 그런 전황을 아는가.”

이항복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전라도에서는 다 알지요. 군에 간 병졸들이 고향에 알리고, 또 소식이 해안에서 내륙으로 퍼지고 있구만이요. 의주 올라오면서 여러 병사들로부터도 들었고요. 따져보니 모두가 사람의 일이었사옵니다. 어떤 커다란 것이 이룬 것이 아니드마요.”

“모두 사람의 일이렸다?...”

왕이 곰곰 새기듯이 뇌었다.

“그런 것 같사옵니다. 적재적소 인력 배치가 이런 전과를 올리고 있는 듯하옵니다. 정충신, 그것을 더 소상히 고해 올리겠니?”

이항복이 다시 거들었다.

“네, 어영담은 바다에서만 삼십년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다 사정을 물귀신보다 더 빠삭하게 안다고 하옵니다요. 그런 그에게 물길을 살피는 역할을 주고, 다른 섬 출신에게는 바다에 돌출한 곶과 귀퉁이에 배를 감추었다가 돌격하고, 어느 물길에서 배수진을 치는가를 맡긴 것이옵니다. 모두가 섬과 바다를 아니까 왜적은 뼈도 못추린 것이옵니다.”

“그것으로 내가 명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벌써 평양성이 함락되고, 의주 턱밑까지 왜 군사가 쳐들어왔는데, 버틸 수 있는가. 그것만으로 과인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가 말이다.”

대략난감이었다. 왕이 나서서 백성들의 두려움을 진무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두려워하며 불안해 하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길 하나만 건너면 아버지의 나라 중국인데, 왜 그렇게 어려운 생각들을 하는가.

왕을 사로잡으려고 그 많은 적병들이 북으로 북으로 달려온다는데 뱃길 한번이면 끝나는 것을 왜 맞서려 하지? 쉬운 길을 왜 어렵게 가려고 하지? 아버지 나라에 일단 피신했다가 후사를 도모하면 안되나? 왕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전하, 불행 중 천행으로 왜 군사들의 내분이 격화되고 있사옵니다.”

“적이 지네들끼리 싸운다고?”

“그렇사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 1군사령관과 가토 기요마사 2군사령관 간에 크게 싸움이 붙었다고 하나이다.”

“고니시란 놈은 예수쟁이고, 가토란 놈은 도요토미의 조카란 자 아닌가. 그런데 그자들이 왜 다투나?”

“상감마마를 서로 먼저 생포하겠다고 경쟁이 붙었다고 하옵니다. 그런 경쟁으로 평양에서 칼을 빼들어 겨루었다고까지 하옵니다. 이런 분열이 우리에게는 유리한 국면이 될 것이옵니다. 그들끼리 붙으면 힘이 분산되니까요.”

자신을 생포하려고 경쟁이 붙었다? 경쟁이 붙어도 하필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툰다? 그들은 하고자 하면 꼭 이루는 자들 아닌가. 이러다가 정말 붙들리는 건 아닐까. 왕은 속이 바작바작 탔다.

“좌상을 불러오렸다.”

좌의정 윤두수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다. 어영대장으로서 왕을 호종(扈從)할 때 우왕좌왕하는 왕실 조직을 탁 틀어쥐고 움직여 의주까지 온 사람이다. 임금의 피난 행차 때, 어가(御駕) 주위에서 임금을 모시는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신하들도 그렇고, 궁녀들도 하루이틀 지나자 정신이 해이해지더니 서로 웃고 떠들거나 갖춰 입은 조복과 예복을 내던지고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윤두수가 어영대장으로 들어서더니 이를 잡아버린 것이었다. 원조와 분조로 나뉠 때, 그는 원조의 선조를 호위하면서 충성을 다했다. 그것은 전비(前非)를 만회할 기회이기도 했다. 윤두수는 서인 정철과 함께 건저(왕의 후계자를 책봉하는 일)에 연루돼 함경도 회령에 유배되어 있었다. 다시 부름을 받았으니 속죄의 마음으로 왕을 진실로 보필하고 있었다. 윤두수는 곧고 강단있는 신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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