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36> 제8장 의주행재소, 회한의 땅

어전에 들어와 정좌한 좌의정 윤두수가 상황을 살피더니 말했다.

“소년병사를 물리고, 예판을 불러들이도록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예조판서는 그의 아우 윤근수였다. 그는 예판을 통해 전국 민심의 소재를 왕에게 고하고 싶었다.

정충신이 밖으로 나가고 예판 윤근수가 떼가 전 조복에 복대를 하는 듯 마는 듯한 복장으로 황급히 입궐하자 좌의정 윤두수가 말했다.

“지금 전국이 들끓고 있사옵니다.”

대책을 말하라는데 뚱딴지같이 전국이 들끓고 있다니, 의아스러워서 왕이 물었다.

“전국이 들끓는다는 말은 무슨 변고인고?”

“분조를 다녀온 예판이 말해보시오.”

윤두수가 아우 윤근수를 눈짓으로 독촉했다. 윤두수 곁에 엎드려있던 윤근수가 고개를 들어 아뢰었다.

“전라좌수영군이 옥포 합포 적진포에서 왜 수군을 물리치고, 사천에서도 왜 명장이라는 모리 데루모토가 이끄는 전함 13척을 격파하고, 당포해전에서 21척, 당항포에서 26척을 수장시켰나이다. 보성 율포에서도 숨어든 모리 데루모토의 최정예 전함 7척을 격파했나이다.”

“하지만 육로에선 매번 깨지고 있잖은가. 어여튼 그래서?”

“여세를 몰아 전라좌수영군은 전라우수영군과 합세하여 여수 앞바다에 집결하였는데. 전선이 74척, 합선 92척, 수송선 10척 등 200척 가까운 전선단(戰船團)을 꾸렸다 하옵니다.”

“그 배를 어떻게 마련했더란 말이냐.”

“낙안 흥양 고금도 벽파진 어부들의 배가 참여하고, 나대용 장수가 선단 수리반을 편성해 주야로 낡은 것은 고치고, 새 군선을 소나무를 베어와 만들면서 전선단을 꾸렸다 하옵니다. 이렇게 대비하면서 해상권을 장악하니 왜의 추가 병력과 병참선이 차단되었은즉, 육지에 남은 왜병들은 독안에 든 쥐 꼴이옵니다.”

“뱃길을 막으니 왜의 추가 병력 투입이 저지되고, 그래서 육지의 왜병이 고립되었다?”

“그렇사옵니다. 육지 또한 우리의 관·의병이 대오를 갖추고 있나이다. 김천일과 고종후 의병부대가 활약하고, 공시억 김극후 유사경 김팽수 의병장들이 출진하였사옵니다. 곽재우도 맹활약중이옵니다.”

“곽재우는 말하지 말라. 그중 고종후는 누구냐?”

왕은 곽재우에 대한 편견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고종후는 고경명 장군의 차자이옵니다. 아버지 경명과 형 인후가 이치전에 나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자 차자인 종후가 나서서 왜장 목을 따겠다고 용전분투하고 있나이다.”

“아버지와 형을 죽인 자들, 반드시 복수하겠다 이 말이지?”

“그런 사사로운 감정도 있겠지만, 오로지 상감마마와 나라를 위해서 일어선 것이옵니다. 의로운 자들이 이렇게 한결같이 나서니 무너진 강토가 다시 일어서고 있나이다. 황해도에서도 의병군이 일제히 기병했나이다.”

“황해도는 누구냐?”

윤근수는 친구인 이정암을 소개했다.

“황해도토초사로 임명한 이정암이란 인물이옵니다. 그는 모은 의병들을 엄한 군사규율로 다스린즉, △적과 싸우는 중에 도망가는 자는 참한다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자는 참한다 △군사기밀을 누설한 자는 참한다 △처음 약속하고 나중 배신하는 자는 참한다 △남의 공을 뺏은 자는 상을 뺏는다, 라는 의병약속을 써붙였사옵니다. 백성들에게는 성 축성 할당량을 제시하고, 병사들을 단련하여 활과 칼을 몇백 대씩 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을 채우지 못하면 엄격한 군율로써 다스렸나이다. 그런데 이천(利川) 분조의 왕세자 저하께서 다른 교서를 내리셨나이다. 놀라운 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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