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중견 작가 오봉옥, 다섯 번째 시집 출판

‘섯!’…아내를 향한 가슴 절절한 노래 시편으로

깨달음을 자기 안에서 찾는 활달한 자유의 시학

우리 집 처마 끝에 매달려 집을 지키는 물고기 / 바다를 품어본 적이 없고 바다로 나아갈 생각도 없는 가엾은 저 양철 물고기 /

문지기 수행자로 살기 위해 얼마나 허공을 쳐댔던 것일까/ 가만히 다가가 보니 비늘이 없다 /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의 어깨에 달라붙은 그렁그렁한 비늘/ 나 죽은 뒤에도 관 속까지 따라와 가슴에 곱다시 쌓일 것 같다/ -<아내> 전문

국내 문단의 대표적 진보작가 겸 중견 시인 오봉옥이 8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섯!’을 펴냈다.

오봉옥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필화를 겪고 옥고를 치른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해방 전후의 좌익 활동을 연작시(창비시선 ‘지리산 갈대꽃’<1988년>, ‘붉은 산 검은 피’< 1989년>) 형태로 전면에 드러낸 최초의 시인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자 문학평론가인 임헌영은 후배 오봉옥을 시집 표사를 통해 이렇게 격려했다. “광주항쟁을 겪은 오봉옥 시인은 서사시집 ‘붉은 산 검은 피’로 엄혹한 고초를 다시 겪었다. 그 시절 그는 브레히트와 네루다의 후계였다. 그로부터 30년, 오 시인은 사랑, 죽음, 민주주의, 꽃, 나비 그리고 인간, 이 모든 존재들이 서로에게 등대임을 깨닫게 해주는 시인이 됐다” 고 평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아내를 향한 절절한 시집을 펴내 화제다. 이 시집에서 아내는 “구멍 난 팬티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는 여자/ 늘어진 뱃살을 애써 감추며 배시시 웃는 여자”로 표현했다. 시인은 아내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며 “살갗 좀 늘어진들 어떠랴. 엄니 가슴팍처럼 쪼그라들고 늘어진 거기에 꽃무늬 벽지 같은 문신 하나 새기고 싶다”고 했다.

시집 ‘섯!’의 표지에는 인상 깊은 시 한 편이 실려 있다. 촌철살인으로 쓴 한 줄짜리 시 ‘그 꽃’. “시인은 죽어서 나비가 된다 하니 난 죽어서도 그 꽃을 찾아가련다” <그 꽃>.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임우기는 이 시를 “아내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직관으로까지 이어져 한 문장의 시편이 탄생한 것”이라 평한다.

시인이 세 번의 심장수술을 받으면서 썼다는 ‘나를 거두는 동안’에서는 “다음 세상에서도/ 그녀가 사는 정원의 작은 바위로나 앉아/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살아야 할 것 같은/ 설운 오늘”이라고 노래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오 시인은 1962년 광주광역시 출생으로 1985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노랑’ 등 시집과 산문집 ‘난 월급받는 시인을 꿈꾼다’, 동화집 ‘서울에 온 어린왕자(상, 하)’, 비평집 ‘시와 시조의 공과 색’ 외 다수를 썼다.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을 거쳐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와 ‘문학의 오늘’ 편집인을 맡고 있다.
/노정훈 기자 hun7334@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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