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보다 효가 먼저인가? - 최부 (3·끝)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493년 4월19일에 대사헌 이세좌는 또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최부를 돕기 위해 주창(主唱)한 자를 국문하라”고 하였다.

이러자 성종은 사헌부의 의견을 대신들이 의논하도록 했다. 이에 윤필상과 노사신은 “홍문관의 정상(情狀)을 이해하면서도 사헌부에서 아뢴 것이 옳다”고 하였고, 윤호·허종 등은 “홍문관이 최부를 서용하는 일은 중의(衆議)를 청한 것이지 동료를 구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성종은 최부에 대한 시비(是非)를 다시 논의하라고 하교했다. 사헌부의 홍문관에 대한 공격의 방향을 최부에 대한 시비로 틀어버린 것이다.

이에 노사신·허종·이극균등은 “최부의 소행을 논하지 말아야 하며, 허물을 묻는 것은 애매하다”고 말했고, 홍귀달·안침은 “최부는 어명을 따른 것이고 벗들이 조문 와서 별 수 없이 만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덕숭·김사원은 “어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즉시 분상하지 않았으니 논박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대신의 의견을 들은 성종은 최부를 폐출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다시 결정하여 아뢰라고 전교했다.

윤필상은 “최부가 어명을 따른 것은 논하지 말아야 하나 친구를 접대한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성상께서 재결(裁決)하소서”라고 하였고, 노사신 · 한치형 등은 이미 말씀드렸다고 하였다. 한편 대사헌 이세좌은 “최부는 귀국 후 즉시 갔어야 마땅합니다. 일기 찬수가 비록 어명이라도 전말(顚末)만을 대략 기록하고, 즉시 사직하고 돌아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홍문관에서 동료를 비호하는 것” 이라고 아뢰었다.

성종은 그간의 논의들을 정리하면서 “경(卿) 등이 홍문관에서 먼저 주창한 자를 국문하라고 했지만 공의(公議)를 따라서 한 것이니, 추문할 수가 없다. 지난번에 대간들이 최부가 친구를 접대한 것이 옳지 못하다고 했기 때문에 이미 체직시켰다. 이미 끝난 일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이어서 성종은 최부의 보직을 홍문관 교리에서 승문원 교리로 바꾸었다. 이로써 최부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최부는 두 번씩이나 큰 곤욕을 치렀다.

최부가 승문원 교리로 임명된 지 1년이 지난 1494년 5월에 최부는 홍문관 교리로 되돌아 왔다. 그 만큼 성종의 신임은 두터웠다.

1494년 12월24일에 성종이 38세의 나이로 붕어했다. 19세의 연산군이 즉위하자 조정은 격랑 속에 휩쓸렸다. 임금이 바뀌어도 최부는 대쪽 같은 선비였다. 사리사욕과 방탕 그리고 무사안일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 강직한 간관(諫官)이었다. 그는 훈구대신과 임금의 종실과 외척 그리고 후궁과 환관들의 타락을 신랄하게 공박하였고 심지어 임금의 잘못까지도 낱낱이 거론하였다. 한번은 연산군에게 “학문을 게을리 하고 오락을 즐기며 국왕이 바로 서 있지 않다” 고 상소하였다. 연산군 3년(1497년) 3월, 사간원 사간 최부가 올린 상소는 너무나 격렬하여 다음 달에 그가 중국 황제의 생일 축하 사신으로 갈 때 연산군은 관례를 깨고 사간의 직책을 회수하여 버렸다.

연산군 4년(1498)에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무오사화는 김일손의 사초 문제에서 시작해 김종직 문인을 붕당으로 규정하고 일부 대간들을 능상의 명목으로 단죄한 사건이다. (민음사,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p 48)

김종직의 제자이면서 이미 연산군 눈 밖에 난 최부가 무사할 리가 없었다. 곤장 80대를 맞고 함경도 단천으로 유배 갔다. 6년 뒤에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그는 또 끌려 왔다. 곤장 100대에 노비가 되어 거제도로 유배 가는 것으로 되었으나 연산군은 그리하지 않았다. 참형(斬刑)을 명한 것이다. 최부의 나이 50세였다.

1504년 10월25일 ‘연산군일기’에서 사관(史官)은 이렇게 평했다.

최부는 공정하고 청렴하며 정직하였으며 경서(經書)와 역사에 능통하여 문사(文詞)가 풍부했고, 간관이 되어서는 아는 바를 말하지 아니함이 없고 회피하는 바가 없었다.

아쉬운 점은 최부(1454∽1504) 평전(評傳)이나 전기(傳記)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표해록’은 잘 알려져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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