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48> 9장 다시 광주

군중을 향해 소리지르는 청년은 바로 길삼봉이었다.

“삼봉 성님!”

정충신이 그를 불렀으나 처음 그는 정충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삼봉 성님 아니요? 나 정충신이요!”

“뭐 정충신?”

“여기서 만날 줄 몰랐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요?”

“니가 무슨 장수라고 철갑(鐵甲) 전복을 다 입었냐. 묘한 놈일세. 남의 전복 뒤집어쓰고 장수행세하는 사기꾼새끼 아니여?”

그가 반가움 대신 놀라면서 성질을 내고 있었다.

“고것은 사실은...”

하고 말하려는데 길삼봉이 어이없다는 듯 다시 소리쳤다.

“니가 입은 것은 전복이 아니라 우장(雨裝)이다, 우장. 하하하! 몸에 맞들 안혀! 어디서 훔쳤냐?”

“그럴 일 있당개요.”

길삼봉이 여전히 눈을 크게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태도로 물었다.

“타관에서 무슨 병정놀이 한겨?”

“성님은 여기 어떻게 된 것이요?”

대답 대신 정충신이 되물었다.

“지금 그 말을 어떻게 다 하것냐. 어디로 가자. 나는 니가 의주에 가있는 중 알았는디 평양성내의 거지떼들하고 우굴거리고 있는 것 봉개 솔찬히 실망이다.”

“나도 같소. 성님은 어쩌자고 이 난장판에 와있소? 아줌씨는 어떻게 되었소?”

“아줌씨라니?”

“성환 땅에서 만난 여자 말이요. 그때 왜군놈들한티 당하고 분이 나서 죽을 중 알았는디, 나가 살려줬싱개 궁금하지라우.”

정충신의 말을 묵살하고 길삼봉이 말했다.

“가자. 저기 가서 속 씨언하게 회포 풀자. 을밀대 밑에 주막이 있다.”

“나는 술 안해요.”

“남자가 그 나이면 술을 배워야지, 맨숭맨숭 무슨 낯으로 서로 보겄냐?”

“맨숭맨숭한 얼굴로 봐도 나는 성님이 반갑소야.”

“나도 두 말하면 개소리제. 자 어서 가자. 저 사람들 알아들으라고 다 이약 했싱개 살고 죽는 것은 지들이 알아서 하겄제. 내 말 알아차리지 못하면 다 디지는 거고...하긴 이래 디지나 저래 디지나 다 디질 시국잉개 별것 있겄냐만, 그래도 나가 아는 이상은 먹는 단속을 해줘야제.”

“그렇더라도 그렇게 무작스럽게 이약 하면 인정머리 없다고 하제라우. 같은 말도 다정다감한 것이 교양있는 사람이요.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하면 빈충맞제라우.”

“그 말은 진심이다. 너가 솔찬히 컸구나.”

두 사람은 어깨짬을 하고 구렁창을 빠져나왔다. 을밀대 밑에 스무가호 남짓 되는 마을이 옹기종기 눌러 앉은 귀퉁이에 허름한 주막이 하나 있었다. 그들이 행랑채의 골방을 잡아 좌정하자 길삼봉이 물었다.

“도대체 너는 먼 사람이간디 장군복을 입고 이 난리 속을 헤매냐.”

“나도 이약을 하자면 사연이 복잡하단 말이요. 차차 말할팅개 아줌씨 얘기나 하쇼. 어떻게 되셨소?”

“왜 그 여자한티 관심이여? 나가 어찌했을깨미 불안하냐?”

“그 여자는 나가 살려준 여자 아니요? 그 험한 꼴 당하고도 견뎠는지 궁금하제라우. 생각만 해도 아찔하요.””절에 보냈다.”

“절에요? 여자 중이 되었다고요?”

“보현사여. 서산대사께옵서 주석하신 곳이여.”

“머리 깎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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