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저널리즘에서 평화저널리즘으로

김덕모(호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북미정상회담’이후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기대가 컸던 탓에 한반도 평화의 봄이 또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판문점선언’ 100일을 맞이한 시점에서 선언의 주요내용들이 단계적으로 진척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올해 초 만해도 북한과의 전쟁을 언급하던 초긴장의 형국에서 남·북·미가 한반도의 평화를 논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일대 역사적 전기를 마련했다고 하겠다.

최근 북한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했던 6.25참전 미군유해 송환을 이행하고 그와함께 김정은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이에 대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좋은 편지(nice letter)’라 칭하고 그에 대한 답신을 보내면서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한 기대가 다시금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안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다시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론 보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동안 우리 언론의 북한보도태도는 ‘안보상업주의’와 메카시즘적 반공주의에 의해 억측과 오보, 왜곡보도에 의해 북한의 실체를 제대로 전달하는데 실패한 측면이 있다.

그 이면에는 북한의 폐쇄성과 우리 언론 스스로 확인을 애써 무시한 측면, 남북교류 단절에 의한 북한 정보 수집량의 급감 등이 작용했다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거의 70년간 언론을 속박해 온 전쟁저널리즘의 굴레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쟁저널리즘은 전쟁 시기에 나타나는 특수한 저널리즘의 형태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한국전쟁 이후 65년이상 정전체제가 유지되면서 북한을 ‘우리’와 대립되는 ‘그들’로 타자화하고 적대시하며, 비인간화의 굴레를 씌워 문제 집단으로 묘사하는 전쟁저널리즘에 길들여져 온 측면이 있다.

어쩌면 브루스 커밍스가 갈파했듯이 세계 언론에 북한은 아무렇게나 쓰고 말해도 되는 ‘백지수표’ 같은 존재로 인식돼 왔고, 북한 보도에서는 저널리즘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객관보도도 지켜지지 않고 오보, 미확인 보도, 왜곡 혹은 의도된 왜곡보도를 의미하는 ‘채리피킹’이 자행되었다. 의견과 논평보도에서도 일방적인 주장과 무원칙한 자의적 해석, 과학성을 결여한 비합리적 보도가 상업적 이익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저널리즘의 본령을 희생하며 이루어 진 측면이 있다. 이러한 언론보도는 북한의 실체를 이해하고 한반도 문제를 대화로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폭력적 문제해결 방식을 키워왔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동서독의 통일과정에서 서독의 언론 특히 서독의 방송이 보여주었던 저널리즘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동독을 미화하고 좋은 모습만 선별적으로 내보내고 동독에 불리한 내용은 보도하지 않은 동독언론에 비해 서독 텔레비전은 저널리즘의 전문성에 입각하여 객관적이고 가감 없는 균형 잡힌 보도를 함으로써 동독주민들의 신뢰감을 얻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1986년 동서독 문화협정체결로 동서독간 텔레비전의 프로그램교환, 상호제작지원 등 언론교류의 활성화로 언론이 독일민족의 동질성과 정체성의 유지에 도움을 주었던 것이 독일 통일에 기여했다는 평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아니면 말고식’ 무책임한 한건주의식 보도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본령에 충실한 객관보도와 이성에 입각한 균형 잡힌 합리적 보도태도가 당사자 간 상호신뢰와 대화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푸는데 도움을 주는 저널리즘이라는 점을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북화해시대 한반도 평화의 정착과 남북통일의 역사적 희망을 위해 전쟁시대의 상징인 전쟁저널리즘을 극복하고 평화저널리즘을 정착하여 남북언론의 활발한 상호교류가 현실화되는 날이 조속히 실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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