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연중기획

전남미래, 섬·바다에 달려있다

<25>‘가족의 섬’고흥 우도

하루 두 번 바닷길 열리는 투박·자연미 ‘듬뿍’

‘바다 갈라짐’현상 노둣길 1.2㎞ 마을 오가는 통로

갯벌 광활‘자연 낙원’엔 석화 천지 어민 ‘곳간’역할

竹화살 임진란 승리 기여·썰물 놓친 연인 부부 되기도
 

고흥 우도는 하루 두번씩 바닷길이 열린다.‘노둣길’이라 불리는 이 바닷길은 1.2㎞에 달한다. 승용차 한 대가 오갈 수 있는 넓이의 도로다. 사진은 남양면 중산마을에서 바라본 우도 마을 전경.

‘우도’하면 제주도에 있는 우도를 먼저 떠 올리게 된다. 하지만 고흥에도 제주도 못지 않은 멋스러움을 간직한 우도가 있다. 제주 우도와 달리 유명세는 없지만 최근 사람들의 ‘알음 알음’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곳이다. 고흥 우도는 독특한 자연 현상 때문에 유명세 대열에 합류할 조짐을 안고 있다. 바로‘모세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바닷길이 하루 두 번 열린다. 한 번 열리면 6시간 정도 섬에서 육지로 바뀐다.

이 곳 사람들은 1.2㎞ 정도에 이르는 열린 바닷길을 ‘노둣길’이라고 부른다. 우도를 갈려면, 고흥군 남양면 중산마을에서 이 노둣길을 통해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그냥 걸어서 들어간다. 원주민들은 보통 경운기를 이동 수단으로 활용한다.

우도는 득량만내에 위치해 있는 작은 섬이다. 면적은 0.626㎢ 규모이고, 해안선 길이는 3.25㎞에 이른다. 흔히 ‘가족의 섬’이라고 부른다. 바닷길이 열리면 연인들이 섬을 찾았다가 일조시간을 놓쳐 억지로 하룻밤을 자야했기 때문이다. 연인 사이에서 밤새 가족으로 변해 가는 커플이 종종 있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다고 한다. 듣고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수긍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얘기로 해석된다. 섬의 역사를 알고나면, 이처럼 재미가 배가 된다. 믿거나, 말거나 우도는 왠지 모를 친근감으로 벌써 가슴 속에 자리잡는다.

▶우도(牛島)유래

우도는 고려말 황씨 일가가 처음 입도했다. 섬이 마치 소 머리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소섬’또는 ‘쇠이섬’으로 불렸다. 그러다 ‘쇠이’가 한자로 변해 현재의 우도(牛島)가 됐다. 또한 대나무가 많아 임진왜란 당시 화살을 만들어 국가에 바쳤는데, 그 화살로 대승을 거둔 이래 우죽도(牛竹島)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자연스럽게 가운데 죽(竹)자가 빠졌다는 주장도 있다.

노둣길이 열리는 이유는 ‘바다 갈라짐’현상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육지와 떨어진 섬이었다가 해수면이 낮아지는 저조시에 주변보다 높은 해저면이 노출되면서 육지와 섬이 연결되는 현상을 말한다. ‘모세의 기적’이라고 불리워지는 자연의 조화다. 때로는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섬이 되기도 하고, 육지와 한 몸이 되기도 한다.

우도에는 43가구, 8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 수입원은 자연산 굴(석화)채취와 낙지잡이 등이다. 구릉이 많아 채소 같은 밭농사도 짓고 있다.

▶노둣길

고흥 남양 중산마을에 도착하니 ‘가족의 섬’우도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갈라짐 시간’이 적힌 알림판도 눈길을 끈다. 지난달 26일 오후 1시께 도착했다. 이른 아침 인근 연홍도에 이어 두 번째 취재다. 연홍도와 우도는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승용차 내부에 있는 기온 알림판은 38도를 훌쩍 넘었다. 몸과 마음은 지친 상태다.

하지만 중산마을에서 바라본 우도는 이미 섬이 아닌 육지로 변해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지쳤던 몸도 불끈 힘을 냈다. 노둣길은 완전히 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 9시30분께 물이 빠져 오후 3시 30분까지 모세의 기적을 연출했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승용차 대신 어린아이 처럼 들뜬 마음을 머금은 채 신기하게 걸었다.
 

해수면 수위를 알리는 쇠기둥.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노둣길은 승용차 한 대만이 간신히 오갈수 있도록 시멘트로 포장된 1.2㎞ 길이다. 마을까지 20여분 정도 소요됐다. 오가는 승용차가 비켜 갈수 있도록 30m 간격으로 갓길이 마련돼 있어 통행에 지장을 전혀 주지 않았다. 길을 따라 쇠기둥도 촘촘히 서 있다. 상부에는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바닷물이 어디까지 들왔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주민들이 마련했다고 한다. 일종의 해수면 위치 표시다.
 

이 곳의 특산물인 자연산 석화를 채취하는 광활한 갯벌. 지주대에 주로 석화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바다목장 역할을 한다. 바닷길 뒤로 지주대가 보인다.

노둣길 좌우의 광활한 갯벌에는 군데군데 지주대가 눈에 띄었다. 이 지주대는 일종의 바다 목장 역할을 한다. 굴이 성장할 수 있는 터이다. 대표적 특산물인 자연산 굴의 생산지임을 실감케 했다. 이 곳의 자연산 굴은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캔다. 어민들의 곳간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어민들에게는 효자가 따로 없다.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는 참게를 비롯한 생태계 천국으로 변해 버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도 저마다 먹이잡이에 분주하다. 낙원이 별건가. 이들에게는 이 곳이 바로 낙원이다. 단지, 갯벌 체험을 가로막는 폭염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해안일주도로

흐르는 땀을 마다않고, 노둣길을 따라 걸으니 선착장을 거쳐 마을 입구에 다달았다. 마을 가옥들을 감싸고 도는 산에는 아직도 늘푸른 대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화살을 만들어 구국에 적극 나선 옛 선조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 올랐다. 자랑스런 자손의 후예임을 또다시 느낀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도 마을 가옥 곳곳에는 대나무들이 무성하다. 임진왜란 당시를 입증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을 왼쪽을 휘감아도니, 또다른 선착장이다. 줄잡아 30여명으로 보이는 한 무리들이 배로 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용술 어촌계장에게 물었다. “지금이 새꼬막 종패 적기여서 이를 심으러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라고 말했다. 특이한 것은 마을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단다. 대다수가 외국인이다. 섬에도 인력난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을 뒤로 하고 마을 중앙을 관통해 정상인 봉들산 전망대에 올랐다. 드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전망대에 오르니, 폭염도 잠시 쉬어가는 듯 했다. 전망대 모형이 눈길을 끈다. 나선형이다. 상단은 하늘이 보이도록 확 트였다. 우주로 향하는 고흥의 꿈을 상징화 했다고 한다. 조형물 하나에도 이런 깊은 뜻이 있다니, 그저 감탄스럽기만 하다.

고흥 동강면을 비롯 대서, 두원, 과역, 남양면 등 5개 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파랗게 펼쳐진 다도해 덕분에 가슴이 뻥 뚫인다. 덩달아 기분이 상쾌해진다. 사람들이 이 맛에 취해 섬을 찾는가 보다.
 

봉들산 정상에 마련된 나선형 모형의 전망대. 동강면을 비롯 대서, 두원, 과역, 남양면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확트인 다도해 전경에 가슴마저 뻥 뚫린다.

▶취재 후기

우도는 관광객들을 위한 편익시설이 아직 구비되지 않았다. 이정표 하나 변변치 않다. 자연 그대로만을 즐겨 찾는 사람들 만을 반길 뿐이다. 옛부터 ‘집을 나서면 고생’이라고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개고생(?)을 마다않고 오늘도 집을 나선다. 그저 자연에 순응해서 그 자체를 즐기려는 순수한 욕심때문이리라. 그래서 유독 이 곳은 가족단위, 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인지도 모른다.

바닷물이 빠진 드넓은 갯벌은 관광객들에게는 또다른 추억을 선사한다. 갯벌이 주는 선물, 분명 매력이다. 남해안 낙조 역시 평생 가슴 속에 아름다운 풍광을 안겨줄 것이다.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투박하고 시골스러움 자체가 주는 우도는, 인간만이 누리는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글·중서부권취재본부/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

사진·/위직량 기자 jrwi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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