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미디엄, 라지?

문상화(광주대학교 교수)

문상화
미국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면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음료수 컵의 크기를 묻는다. “작은 거(small), 중간 거(medium), 큰 거(large)?” 이렇게 물어서 돈을 받고는 원하는 사이즈의 빈 컵을 준다. 컵을 받은 고객은 매장의 안에 준비된 음료수 기계로 가서 원하는 종류의 음료수를 마시는 것이다.

“교수님, 컵 사이즈를 정하는 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곁에 있는 학생이 순진한 표정으로 묻는다.

“작은 거로 사서 계속 리필(refill)하면 되니까?”

“네”

실제로 몇 번이든 음료수를 마실 수 있으니까 가장 작은 사이즈의 컵으로 주문해서 마음껏 마시는 게 고객의 입장에서는 가장 경제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햄버거 가게에서는 왜 컵의 사이즈에 차이를 두어서 주문을 받는 걸까?

시카고 시내에서 오헤어 국제공항으로 가는 손쉬운 방법은 지하철을 타는 것이다. 지하철이 공항과 연결되어 있고, 또 요금이 3달러 밖에 하지 않으니 편리하고 경제적이다. 또 지하철 역내에는 티켓 판매기가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표를 구매할 수도 있다.

올 여름 시카고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투박하게 생긴 기계 앞에 서서 요리조리 살피다가 별 어려움이 없이 보이길래 행선지를 누르고 10달러짜리 지폐를 넣었다. 순간 “계속하시겠습니까?”라는 화면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는 “아니요”를 눌렀더니 10달러가 다시 나왔다.

한참을 노려보다가 별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하고 10달러 지폐를 넣었더니 또 다시 나타난 “계속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번에는 “네”를 눌렀다. 그랬더니 기계가 내 돈을 꿀꺽 삼킨 다음 티켓을 한 장 내 뱉고는 무심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계가 꿀꺽 삼키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거스름돈 나오는 구멍은 없고 기계는 모르쇠하는 표정으로 서있는 것이다. 역내에 역무원이 없으니 물어 볼 수도 없어서 기계를 떠나지 못하고, 혹시 거스름돈 나오는 곳이 뒤에 있나 살펴보려다가 “이 기계는 거스름돈이 없으니 정확한 금액만 사용하시오”는 경고 아닌 경고문을 보았다. 그러니까 조금 전 기계는 ‘거스름돈은 안 줘도 되겠느냐’고 물었던 것이고 내가 무심결에 ‘네’라고 대답한 것에 신이 나서 꿀꺽 내 돈을 삼킨 것이다.

티켓 값의 두 배가 넘는 돈을 기계에게 빼앗기고 나니 갑자기 친절한 우리나라 생각이 간절해졌다. 거스름돈은 물론 기계가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을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는 우리나라는 얼마나 천국인가!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꾸역꾸역 듣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무원들에게 모르기는 해도 천국의 한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일 것이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화를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면서 도대체 이 녀석들은 왜 이런 엉터리 기계를 쓰고 있는지 생각했다. 화성에까지 우주인을 보내겠다는 녀석들이 거스름돈을 안 내주는 기계를 쓰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꿀꺽 소리와 함께 기계의 뱃속으로 사라진 7달러에 대한 쓰린 속과, 그 쓰린 속을 달래 줄 해결책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서 ‘시카고 발전을 위해 7달러를 기부한다’고 자위하기로 했다. 저 거대한 시카고가 내 돈 7달러로 인해서 더욱 안전해지고, 더욱 깨끗해지고, 또 더욱 아름다워질테니 내가 기부한 돈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이제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자. 햄버거 가게에서 고객에게 컵의 사이즈를 묻는 이유는 개인의 양식을 존중하는 것이다. 내가 음료수를 많이 마시고 싶으면 커다란 컵을 주문하면 되는 것이지 작은 컵으로 여러 번 마셔서는 곤란한 것이다. 내 기준에서 보면 작은 컵을 주문해서 여러 번 마시는 것이 이익이지만, 식당은 그런 작은 요령보다는 떳떳한 지불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햄버거 가게에서 성인이 스몰사이즈 컵을 주문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지하철의 그 칙칙한 자판기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거스름돈을 안줘도 되겠느냐”고 기계의 질문에 “예”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경고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정확한 금액을 넣어야 한다는 것은, 규정을 지키라는 완곡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지하철역에서 씩씩거릴 때 어떤 승객 하나가 나 같은 희생자가 되었는데 그 친구,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번쩍 들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냥 가버리고 말았다. 내가 다가가 물었다면, ‘경고를 안 읽은 내 잘못이지’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아간다. 오히려 조그만 이익이라도 더 챙기는 것이 나은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내가 손해 보는 것은 아닌가’ 혹은 ‘이렇게 요령을 부리면 더 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정당한 가격을 치르고 또 정해진 규정을 지키는 것이 실은 우리의 얼굴을 편안하게 하고, 삶을 여유롭게 하는 길이다.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겠느냐는 “스몰, 미디엄, 라지?”라는 질문에 음흉한 미소로 “스몰”이라고 답한다면, 그 음흉한 미소가 얼굴에 오랫동안 머물러 결국은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러니 열 번에 한 번 만이라도 사소한 이익을 내려놓고, 다섯 번에 한 번 만이라도 내 이익을 챙기기 전에 규칙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가을하늘이 한결 청명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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