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53> 9장 다시 광주

길삼봉은 거듭 울분을 터뜨렸다.

“백성들이 목숨 아까운 중 모르고 도끼 낫 죽창 식칼을 들고 왜병들에게 맞서고 있는 사이 그 자들은 가마 타고, 말 타고 몰래 도망가버렸당개. 이런 새끼들을 위해 목숨을 이슬처럼 버리다니, 억울하지 않는가?”

“그 생각은 나하고 다르요. 임금이 있승개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단 말이요.”

길삼봉이 정색을 했다.

“그런 왕은 필요가 없제. 하지만 너는 너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라. 나는 풍신수길이부텀 잡아서 간을 뽑아먹은 다음에 후사를 도모해야 될 성 부르다.”

“그 자는 바다 건너에 있는디 어떻게 간을 꺼내온단 말이오? 명고옥(나고야)에 있다든가, 대판성(오사카)에 있다덩만.”

“지 동생이 얼마전에 죽고, 또 작년말엔 아들이 디졌다고 반 미치광이가 되어버렸다덩만. 사실은 지 종자도 아닌디 말이여.”

정충신이 물었다.

“왜 지 종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요?”

“엄한 군율로 쉬쉬 항개 그렇지, 사실은 지 젊은 막료를 지 마누라 방에 집어넣어서 생산한 새끼여. 고 자는 고자랑개.”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랍디여?”

“그자들은 동방의 예법을 모르는 들짐승들이여. 아무하고도 붙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상놈에 새끼들이랑개. 한마디로 개 접붙듯하는 인간들이여.”

“그런 새끼들한티 우리가 당해부렀구마요.”

“그래서 미치겄단 말이다. 영웅호걸이 필요하다. 댓 놈만 묶으면 될 성 부르다.”

“보현사 절에 들어가 머리깎고 승군이 되면 되잖소. 조백이 엄니도 만나고요.”

정충신은 성환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사슴 노루 멧돼지가 내 주식인디 절에 들어갈 수 있겄냐. 그 재미마저 없으면 못살제. 대신 휴정 스님은 만나볼 것이여. 눌러있으라고 해도 나왔는디, 괜찮은 어른이더라고. 그가 지도자가 되었다면 나라꼴이 이러진 않았을 것이여.”

“신돈 같은 황음(荒淫) 땡중이 고려를 망하게 해부렀잖소. 중이 고기에 맛들리면 절간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안합디여.”

“중 나름이여.”

그가 말하는 휴정 대사는 이런 사람이었다. 선조가 의주로 도망가서 불안하게 나날을 보내는 어느날, 묘향산 보현사에 영험한 노승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사람을 보내 나라를 위해 불공을 드려달라고 간청했다. 노승은 천번 만번 백만번의 불공을 들이는 것보다 한 자루의 검이 더 요긴하다며 승려들을 발기하도록 독려했다.

머리 깎은 자는 모두 일어나라. 각자 자기 산처에서 발기하라. 산에서 무예를 닦은 솜씨로 검을 들라. 이렇게 해서 황해도의 의엄, 관동의 사명, 호남의 처영을 비롯해 각지의 의승장들이 일어났다. 충청도 영규의 승군은 의병장 조헌 7백 의병과 함께 선봉장으로 활약하다가 권율·고경명이 이끈 금산전투에서 전사했다. 구례 화엄사 주지 설홍은 승군 300명을 이끌고 왜군에 맞서다 전사했고, 진주성 전투에서는 신열이 이끄는 승군들이 보리농사를 지어서 군량을 비축하고, 무기를 생산하고, 화포 기술을 익혀서 승군들에게 보급했다.

후에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무찌를 때, 승군이 전라도 관·의병과 함께 맨 선두에서 한양을 수복했다. 왕이 한양으로 환도할 때는 어가의 호송을 맡았다. 전주 사고(史庫)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의 어진을 강화도, 의주, 묘향산 보현사로 옮겨가며 지켰다.

전라 좌수영에는 400명의 승군이 5개부대로 편성돼 이순신의 수군에 편제되었고, 순천의 삼혜는 여수 흥국사에서 300명의 의승 수군을 편성해 지휘했다. 의승군은 관군과 의병보다 조직체계를 규모있게 갖춘 데다 무예가 일반 의병보다 몇단계 뛰어나니 가는 곳마다 큰 전과를 올렸다.

이는 승들이 평소 맑은 물이 흐르는 명산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도와 무를 닦은 결실이었다. 승려들에게 면면히 이어져온 이런 무예는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대를 거쳐온 전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조정은 중을 업신여겼다. 그 많은 전과를 올려도 중인 계급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