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55> 9장 다시 광주

혼슈와 규수 사이를 연결하는 관몬해협은 조선의 해남 울둘목처럼 목이 좁은 데다가 수심 밑에 암초가 솟아 있어서 밀물과 설물 때는 급한 물살로 하여 거친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가 이십리 밖까지 들릴 정도였다.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누구나 겁을 내는 형편이었다. 여기에 홀라당 빠졌으니 이제 죽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위중한 병환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길이지만, 사공들을 급조해 편성한 것이 탈이었다. 일본 수군은 모조리 이순신 전라좌수사가 지키고 있는 조선 남해안 해전에 투입되었고, 자국내에는 쓸만한 자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를 잉태했을 때 해를 품에 안았다고 해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히데요시는 자랐다. 그 꿈의 영험 때문에 일본 통일을 이루고, 조선을 집어먹고, 4500년 세계의 중심이자 세계패권국인 명나라를 굴복시켜 천하의 황제가 되려는 원대한 야망을 달성해간다고 믿고 있는 히데요시였다. 그런데 졸지에 참변을 당하니, 상상만 해도 분통터질 일이었다. 천하의 황제의 왕관을 어머니께 갖다 바치는 것은 고사하고, 어머니 임종도 못보고 바다의 고깃밥이 될 처지에 놓여버린 것이다.

“너희놈들, 이런 파도에 쩔쩔매는데 과연 뱃놈이라 할 수 있느냐! 힘차게 노를 저으렸다!”

사공들이 힘차게 노를 졌는데 중간쯤에 이르러 배가 바다의 험한 물살에 찢기고 말았다. 무엇엔가 부딪쳐 배가 빠지직 쪼개지는 소리가 나더니 급류에 밀려 순식간에 두쪽으로 갈라졌다. 승선자들이 모두 파도 속에 쳐박히고, 그들은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히데요시 역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거추장스럽게 입은 의복을 벗어제끼고 맨 몸뚱이로 물살을 갈라쳐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때 어찌어찌 손과 발끝에 무엇인가 잡혔다. 바위 모서리였다. 휴-, 그것을 잡고 버티면서 게처럼 기어서 위로 오르자 사람 하나 정도가 버티고 앉을만한 뾰족한 바위가 있었다. 그것은 물살에 잠겼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했는데, 히데요시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잔나비의 형상으로 바위 끄트머리를 잡고 잔뜩 웅크리고 앉았다.
"이제 살았다."
흰 이빨을 드러내고 굽이치는 험한 물살 가운데서도 이런 바위를 잡은 것은 행운이었다.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헤엄쳤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에 바닷고기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어렸을 적 물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그는 옷을 입은 채로 헤엄치면 발버둥친 나머지 지쳐서 그대로 수장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렸을 때의 경험이 그를 살려준 셈이었다.

히데요시가 좁은 바위섶에 쪼그리고 앉아 발발 떨고 있는 모습은 그의 별명대로 잔나비 형상 그대로였다. 건너편 마을에서 조난당한 배를 지켜본 아이들이 잔나비가 바위 섶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뗏목을 몰고 다가왔다. 작은 바위에 붙어있는 것이 사람이었다면 소년들은 외면했을지 모른다. 일본 사람들은 이상하게 잔나비를 좋아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곳 물길을 아는 소년들인지라 원숭이 하나 건져서 가지고 놀 욕심으로 뗏목을 저어 히데요시에게 다가왔다.  

‘야, 원숭이가 아니고 사람의 종자다."
소년들이 실망했으나 살아있는 생물인지라 버릴 수 없어서 그를 싣고 돌아왔다. 뭍으로 나오면서 히데요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분명 나를 죽이려는 자가 있다."

미리 뭍에 올라온 다른 사공들과 수병들을 보니 그런 생각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칠백명 중 이백명은 사라지고 오백 명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른 배는 크게 부서지지 않았는데 히데요시가 탄 배는 낙락장송을 베어 만든, 웬만한 풍랑이나 암초에 끄떡이 없는 단단한 군선인데다 사공들도 그중 나은 자들만 골라 썼는데 개박살이 나버린 것이었다.

선장이 반란군 수장 우메키다 구니가네의 휘하 수군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엇을 따지고 붙일 것도 없이 당장 선장 목을 쳐 효수를 하고, 과오를 물어 차례대로 한놈씩 일본도로 목을 갈라쳐 즉결처분했다. 나머지 뱃놈들을 도망가지 못하도록 엄중 경계를 서는 가운데 문초를 계속히는 사이 몇놈은 할복자살했다. 왜놈들은 승부에서 지거나 과오가 있다고 판단하면 스스로 배를 가르는 전통이 있었다. 급소에 화살을 맞고 발발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가는 노루처럼 할복한 뒤 눈을 까뒤집고 죽는 이들의 모습이 끔찍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수행 수군을 모조리 죽이지 못해 분이 난 사람처럼 한놈 한놈씩 국문해 목을 쳤다.

군선 난파의 책임을 묻고, 난파선을 다시 수습하고 삔 발목까지 추스르니 일곱날의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는 그 사이 죽고, 그를 기다리던 장례객들이 썩어가는 시신을 계속 방치할 수 없어 산에 묻고 돌아오자 히데요시가 당도했다.
"그놈들을 죽이지 않고 곧바로 대판성(大坂城)으로 왔더라면..."
그랬으면 어머니 임종은 지켜보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자, 비통해지면서 그 자들이 더 미웠다. 

그러나 이미 끝난 일, 가차없이 마음 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히데요시 성격상의 장점은 지난 것은 빨리 잊고, 불쾌하고 기분나쁜 것은 더 빨리 잊고, 기억에서 영원히 추방해버리는 한편으로 앞으로 할 일을 짐승처럼 밀어붙이는 과단성이었다.  
"국내 상황을 좀더 정리해야 하니 조선 출정을 익년 봄으로 연기한다."
히데요시는 내색하지 않고 이렇게 결정했다. 국내를 청소할 일이 산적했다고 본 것이다. 만약 그때 그가 조선땅을 밟았더라면 길삼봉의 손도끼에 두상이 두쪽 났을 지도 모른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