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소리와 “예스” 삼창

나선희(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나선희 대표


한낮엔 여전히 폭염이 기세등등하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는 처서가 낼 모레인 날.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던 중의 일이다. “올여름 너무 더웠죠? 아휴, 이제 선선해져서 살겠어요.” 어떤 이가 가볍게 건넨 인사말이었다. “선선하긴 뭐가 선선해요. 오늘도 더워 죽을 뻔했고만!” 싸우듯 훅 치고 들어온 말로 순간 주변이 싸늘해지고 말았다. 인사를 건넨 이의 당황스런 표정과 함께 잠시 적막이 흘렀다.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정색을 하실 건 뭡니까? 여러 사람 앞에서 민망하게요?” 만약 상대가 이렇게 따지고 달려든다면 “정색이라뇨? 더워서 덥다고 말한 게 뭐가 잘못됐다는 거죠? 혹시 피해망상 있으십니까?”라고 답했을 사람이다. “뭐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정신병자라는 건가요? 이 사람이?”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치달을 수도 있었다.

말을 섞고 나면 에너지가 소진되는 사람이 있다. 속된 말로 기(氣) 빨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감성지수(EQ)가 낮다. 감성지수란 인간의 정신작용을 기억력 위주의 인지능력으로 구분한 지능지수(IQ)와 비교되는 개념이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능력인 감성지능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감성지수가 낮은 사람은 상대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잘 알아채지 못한다.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가 마음을 열고,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 읽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과의 대화는 힐링이 된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몇 있다. 극도로 피로감이 몰려올 때 차 한 잔 마시며 수다를 떨고 나면 활력이 샘솟는다. 노래 제목처럼 “휴식 같은 친구”가 따로 없다. 나는 그런 친구들의 화법에서 공통점을 찾아냈다. 내 슬픔에 금세 눈물을 글썽인다./내 말에 배꼽을 잡고 웃어준다./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한마디로 내 마음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있는 거다.

자신의 희로애락에 공감해주면 마음을 열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에 의하면 21세기 리더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에 하나가 공감능력이라고 했다. 공감능력이란 상대방의 감정 상태나 기분 상태를 빨리 파악해서 대처해주는 능력이다. 상대가 슬퍼하면 함께 슬퍼하고 상대가 기뻐하면 더불어 기뻐하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키우려면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훈련을 해야 한다. 상대가 “속이 답답해서 밥을 못 먹겠어.”라고 말하면 “속이 답답해요? 어쩌나 힘들겠다.” 공감해주면 된다. 그리고 “누룽지라도 드셔보시지요.”라고 덧붙이면 상대는 밥을 안 먹고도 든든할 것이다. 반대로 속이 답답해 밥을 못 먹겠다는 사람에게 “어젯밤 잔뜩 먹고 자더라.” 핀잔을 주거나, “나도 속이 답답해. 밥 못 먹은 지가 언젠지 모르겠어.” 상대의 고충은 나 몰라라 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자기 이야기로 돌려놓고 마는 사람은 공감능력 제로다.

공감하는 말하기로 가장 좋은 방법은 “예스“라고 긍정해주고 상대가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해 공감해주는 거다. 앵무새 화법이다. 차가 막혀서 약속에 늦었다고 하면 ”네! 차가 많이 막혔어요!”하면 된다. 그러고 나서 ”전화라도 주면 좋았을 걸요. 걱정했어요.“ 덧붙이면 훈훈해진다.

날씨 이야기로 주변을 썰렁하게 만들어버렸던 그가 앵무새 화법을 알았더라면 이랬을 것이다. “네(긍정), 요즘 선선해졌지요. 그런데도 저는 오늘 무척 더웠어요.” 상대의 말에 공감해주면서 내 상태를 표현하는 “예스-벗 화법”이다.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내 의견을 피력하는 상생 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로는 이런 말이 오가지 않았을까? “네(긍정), 오늘도 무척 더웠군요? 더위를 많이 타시나 봐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안쪽은 시원하던데.....” “네(긍정). 감사합니다. 함께 들어가시지요.”

소크라테스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예스”를 최소한 세 번 연속 끌어내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예스”를 세 번 씩이나 삼창하게 하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만큼 상대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귀를 쫑긋 세워놓으면 귀뚜라미 소리는 덤이다. 그러니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 “예스” 삼창은 어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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