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의 화해

<범은희 광주지방기상청 기획운영과장>

말복이 지나면서 일시적으로 폭염의 기세가 줄었지만 주말이 지나면서 다시 폭염특보가 이어지고 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있지만 요즘 같은 더위에 모기의 입이 비뚤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름철 불청객인 모기의 경우 35도가 넘어가면 활동을 정지하는 특성상 올해는 모기의 개체가 줄어들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토록 지난한 열대야도 일시적으로 주춤하면서 아침에는 제법 쾌청한 기운도 느껴지지만 당분간 더위와 이별하기는 어렵겠다. 한낮의 불쾌지수는 여전히 80 내외로 대부분의 사람이 불쾌감을 느끼는, 아직까지는 ‘덥다’고 할만한 날씨인 것이다.

불쾌지수는 기온과 습도의 조합으로 사람이 느끼는 불쾌감을 표현한 것으로 온습도지수라고도 한다.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여름철 실내의 무더위를 알아보는 대표적인 지수로 기상청에서는 불쾌지수를 제공하고 있다. 불쾌지수가 75~80일 경우 50% 정도가 불쾌감을 느끼고, 80 이상의 경우에는 모두가 불쾌감을 느낀다.

여름철 불쾌지수를 생각하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 표현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떠오른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감옥이라는 좁고 한정된 공간이기에 불쾌감을 더 느낄 수도 있겠지만 여름철의 불쾌감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사리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날씨가 더울수록 불쾌지수가 높아져 사건사고가 증가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올해는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된 7월 중순~하순에 오히려 지난해 보다 사건사고가 줄어들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극단적인 폭염 때문에 활동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별일이 아닌데도 쉽게 짜증을 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날씨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기 전에 본인의 짜증에 근거가 있었는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8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뜨거웠던 여름은 잊고 우리에게 다가올 시원한 가을을 맘껏 만끽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더운 여름에게 가했던 비난을 접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그리고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여름과 화해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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