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가 만난 사람-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전 기획 문범강 美 조지타운대 교수

“편견과 고정관념 벗어나면 북한미술 예술성 보여”

2018광주비엔날레서 첫 북한미술전 기획·개최

만수대창작사 제작 최고 수준 조선화 22점 들여와

“특유의 표현법 탐구·발전시켜 독창적 미학 성취”

“사회주의 사실주의 예술사조 독보적인 위상 구축”
 

문범강 교수는 “수묵채색화인 조선화는 동양화의 틀을 깨고 나와 섬세한 묘사와 다양한 표현법으로 독창적인 미학을 성취했다”고 말했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문범강(맨 왼쪽) 교수가 아시아문화전당 전시관에 북한 미술품 설치를 지켜보는 모습./광주비엔날레 제공
2018광주비엔날레 기간 전시될 북한미술 ‘어머니, 막내가 왔습니다’(김성민 작) 조선화./문범강 교수 제공

1980년대 초 서울 명문대를 졸업한 20대 청년은 돌연 미술을 공부하고자 미국으로 떠난다. 유신과 대통령 시해,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70·80년대 혼란스런 한국사회를 온몸으로 경험한 그였다. 대학에서 전공한 학문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미국에 건너간 그는 김치도 먹지 않는 등 새로운 사회 적응을 위해 애썼다. 그렇게 숱한 좌절과 고생끝에 그는 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현재는 미국 대학에서 미술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문범강(63)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이야기다.

문 교수는 2018광주비엔날레(9월 7일~11월 11일) 개막을 앞두고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로 참여해 ‘북한미술 : 사실주의의 패러독스’ 주제전(展)을 기획하고, 성사시킨 주인공이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이기도 한 그는 북한미술전 기획을 ‘운명’으로 설명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는 한국 사회가 싫어 미국으로 갔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한민족이기에 북한 미술에 더 관심을 갖게 됐고, 그 결과 광주비엔날레 전시까지 기획하게 됐다.

문 교수는 북한 미술에 대해 “특유의 기법을 탐구하고 발전시켜 ‘사회주의 사실주의’ 예술 사조에서 독보적인 위상에 올라 있다” 고 평한다. 또 “흔히 ‘북한미술은 선전이 목적이어서 예술성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는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편견일 따름이다”며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북한미술의 독창적인 예술성이 보인다”고 강조한다.

문 교수로부터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전 개최 의미와 북한 미술의 특징, 광주비엔날레 발전 방안 등을 들어봤다. 문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광주 동구 김냇과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북한미술전이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에 포함된 건 처음이다. 의미는 (광주비엔날레는 2회때인 1997년 특별전 형태로 북한미술전을 개최한 바 있다.)

▲먼저 북한미술의 정수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사실 한국 사회는 북한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 기존에 북한 미술을 접한 사람들은 ‘좀 허접하다’, ‘체제 선전 작품들만 있다’는 고정관념과 편협적 시각이 많다. 꼭 그런것만 아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 작품들은 북한의 최고 미술품이다. 미술품 최고 제작사인 만수대 창작사에서 나온 게 90% 이상이다. 또 북한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될 작품은 주제화·산수화·문인화·동물화 등 조선화 4개 부문이다. 북한미술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천편일률적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되도록 다양한 작품을 준비했다. 조선화가 표현뿐 아니라 장르에서도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되는 작품은.

▲조선화 22점이다. 평양에 있는 중국 베이징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이 대부분이다. 몇몇은 미국 워싱턴 예술재단 소장품을 대여해왔다. 특히 주목할 작품은 특정 주제를 가지고 그린 주제화 가운데 집체화다. 집체화 1~2점이 북한 이외 지역에서 전시된 일은 있지만, 이번처럼 6점이 한꺼번에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집체화는 화가 3~7명이 작품 구상에서 완성까지 끊임없는 토론을 거치며 공동제작하는 그림이다. 우리나라나 서방세계에서 빌딩 장식 또는 거리 벽화를 위해 여러 사람이 단순히 힘을 합하는 공공미술과 다르다. 집체화는 국가적인 대토목 공사나 지도자의 서거 등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특정한 주제를 화폭에 담는 일종의 기록화의 성격을 지닌다. 21세기 미술에서 북한 이외 지역에서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제작 방식이다.

-조선화를 좀 더 설명한다면.

▲북한 그림을 대표하는 게 조선화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조선화는 한국화를 일컫는 북한말’이라고 풀이한 것을 봤다. 내가 보기에는 틀린 정의다. 표현기법 면에서 한국화는 조선화가 될 수 없다. 1945년 해방이후 북한 화가들 사이에 동양화의 본질을 따르지만, 민족적 특성이나 사회적·미적 감각을 반영하려는 움직임과 담론이 형성됐다. 1947년부터 이런 화풍의 수묵채색화를 조선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선화는 여러 측면에서 조명되어야 할 특이한 장르다. 그중에서도 전통에 맥을 두면서 과감한 표현기법을 발전시킨 분야가 인물화다. 자유로운 붓 놀림, 면과 선을 잘 조화시킨 북한 인물화의 표현법은 한·중·일 어디에도 없다. 인물화가 조선화 정수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에 나타난 3D 효과는 조선화만의 특징이며 조선화가 이룩한 독보적 경지다. 인물화에서 보듯 북한 화가들은 사실주의적 표현법을 심도 있게 발전시켰다. 화가마다 나름대로 개성도 추구한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란 용어가 생소하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소련에서 1930년대에 시작해 1990년대까지 이어진 미술 사조다. 국가의 통제 아래 사회주의 체제 선전이나 리더의 우상화, 노동·인민의 미화가 주된 목적이다. 미술사에서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1990년대 소련 해체와 함께 끝났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북한은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맥을 지금까지 잇고 있으며 꽃을 피우는 곳이 북한이다. 체제 선전, 지도자의 우상화, 무산계급의 미화 등을 목적으로 한 미술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북한 미술이 알려지지 않으면서 사회주의 사실주의가 소련과 함께 끝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왜 이런 그림이 그 사회에서 태어났는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범주가 완전히 다른데 이쪽의 시각으로 저쪽의 미술을 비교하는 것은 지성적인 접근이 아니다. 이런 토대에서 북한미술을 바라보면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상주의 그림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중세 미술은 대부분 교회 미술이다. 지금보면 중세 미술은 대단히 비판해야 하지만 전쟁, 기독교 등 그 시대의 특징을 담고 있다. 북한 미술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건 소련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은 그렇게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희소성 때문에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따라서 북한 그림도 불편하게 느낄 필요가 없다. 그 사회의 역사와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 조선화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화가로 활동하다가 2010년 조선화를 처음 접했다. 그런데 작품을 처음 보는 순간 큰 감동이 왔다. ‘인간 내면의 존엄성과 감성을 미묘하면서도 깊이있게, 치열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충격이었다.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주의 사실주의와는 다른 작품이었다. 냉엄하고 냉철하고 비판적인, 그러면서 추상적인 현대 미술과 달랐다. 창작의 자유가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인간 내면의 깊은 감성을 담아낸 조선화가 패러독스(역설)로 내게 다가왔다. 그래서 광주비엔날레 기획전의 이름도 ‘북한미술 : 사실주의의 패러독스’로 달았다.

화가로서 궁금증이 샘 솟듯 했다. 또 ‘이런 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있구나’, ‘어떻게 이런 그림이 나오나?’, ‘북한미술에는 또 뭐가 있을까?’하는 느낌과 물음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지난 8년간 북한을 드나들며 연구를 시작했다. 미국의 유수한 대학과 문화센터, 미술관에서 북한 미술에 대해 강연했다. 한국의 선재아트센터에서도 강연했다.(강연당시 선재아트센터 디렉터는 현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다). 북한미술을 ‘빨갱이 그림’이라고 무조건 외면할 일이 아니다. 북한은 자유세계에서 표현하는 미술과는 완전히 다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다름’을 인정하면 조선화가 제대로 보인다.

-북한미술전을 준비하는 데 어려운점은

▲한국사회가 많이 성숙하고 새 정부도 들어서 이념에 대해 오픈돼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북한미술전 기획하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크게 달라진게 없구나 하고 실감했다.

광주시민은 그렇지 않은데 보수적 색채가 짙은 분들은 미술작품도 보지 않고 ‘빨갱이 그림’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북한에서 왔으니까 ‘당연히 그럴거다’는 선입관 때문이다. 이같은 목소리가 광주비엔날레에 전해졌다는 말도 들었다. 아직도 우리사회가 냉전 이데올로기 상흔이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이해된다. 남북이 분단되고 대치하는 현실에서 민감한 문제가 완전히 없어지기는 힘들거다. 그리고 6·25전쟁이나 전쟁 전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나. 살아남은 자들도 큰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 제가 기획한 북한미술전이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될 수 있는 건 대단한 포용이다. 한국사회가 성숙하고 바람직하게 발전했다는 걸 말해준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남북한 미술 교류 기대감이 크다.

▲평양에서 음악과 스포츠는 국제적인 행사가 있지만, 미술은 없다. 그래서 광주·평양이 비엔날레를 공동으로 열거나 격년제로 번갈아 개최하는 방안을 북한측에 제안했다. 북한 당국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작품을 검열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체제 비판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미술 교류는 남북 교류전만으론 한계가 있다. 우물안 개구리다. 진정한 교류가 되려면 서로간의 (인적) 왕래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평양을 가고, 북한도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을 방문하는 게 필요하다. 그 차원에서 광주비엔날레에 북한 미술인 3명을 초청했는데 아직까지 답이 없다. 북한 최고 미술 제작사인 만수대창작사가 국제 제재 틀안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국제제제 완화되지 않는 한 미술 교류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민간차원의 남북한 미술 교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국제 제제 해소와 함께 남북한 당국이 길을 터줘야 한다.

-광주비엔날레 발전 방안은.

기획자로 참여해서 느낀 점은 예산이 너무 부족하다. 예산확보가 가장 바람직하다. 이번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집행부나 기획자 모두 힘들었을 거다. 또 비엔날레 전시관을 집적화해야 한다. 비엔날레는 올해 행사를 위해 규모를 많이 키웠다. 전시관도 비엔날레 전시관과 아시아문화전당 등 2곳이다. 두 곳은 택시를 타도 20분 이상 걸린다. 여기에 옛 광주통합병원에서도 열린다. 일반 관람객이 하루에 다 보기 힘들다. 서울 등 외지에서 방문할 경우 하루에 한 곳을 보고 끝나야 할 상황이다. 공간적 이동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더 확장해서 그 안에서 큰 전시를 소화하고, 주변 시설을 이용해 작은 전시와 특별전 등을 개최하는 게 필요하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는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때 서울로 이사해 서울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쳤다. 대학(서강대학교)에서는 신문방송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평소 매력을 느끼던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혈혈 단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회화 작가로 미국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열었다. 미국 시민권자이며 조지타운대 종신 교수다. 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룬 천경자(1924~2015년) 화백의 사위다.

문 교수는 이론과 현장을 겸비한 세계 유일의 북한 미술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북한 미술 연구를 위해 지금까지 9차례 북한을 방문한 그는 다양한 미술 전문가와 작가 등을 만나고 평양 인민대학습당 등에서 각종 자료와 정보 수집을 통해 북한 미술을 연구했다. 또 한국과 미국 등의 유수 대학과 미술관, 문화센터 등에서 북한 미술을 알리는 데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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