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농업 선구자 -48. 순천 신광수씨>

48.‘야생 작설차’ 신광수 명인

‘천년고찰’순천 선암사 전통 제조법 17대 째 계승

반평생 동안 명맥 잇느라 닳고 닳은 지문은 ‘훈장’

일본·유럽 시장 공략…6차 산업 활성화에 앞장
 

신광수(66)명인은 순천 선암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야생 작설차’ 제조법(구증구포 작설차 법제)을 17대 째 이어오고 있다. /전남도 제공

전남 순천시 조계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선암사의 초입 마을 ‘죽학리’에는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 잡고 있는 차(茶) 명인이 있다.

선암사의 차 전통으로 스님에서 스님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야생 작설차’ 제조법(구증구포 작설차 법제)을 이어오고 있는 신광수(66)명인이 바로 주인공.

그는 선암사 작설차 다맥전승계보로는 1500년대 의병(승병)장으로도 활약했던 청허 휴정스님 이후 17대 째다. 특히 그의 차가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남들이 보면 미친듯 한 차에 대한 그의 열정에다, 차 생육에 적합한 조계산 일대의 기후풍토, 수 백년 수령을 자랑하는 재래종 차나무의 합작품이다.

신 명인은 “차를 만드는 데는 자신이 생명을 걸어놓 듯 엄정하게 작업해야 한다”며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고양시켜 줄 수도 있는 귀한 식품이라는 뜻이다.
 

신 명인은 50여년간 차의 제조, 가공, 조리방법을 원형 그대로 보전해 ‘전통식품명인 제18호’로 지정됐다. /전남도 제공

◇“생명을 걸고 만들어야”

신 명인이 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선친이 불교에 귀의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릴적부터 선암사 스님들의 차 시중을 들게 되면서다.

그는 자연스럽게 어릴 적부터 스님들의 차 시중을 들게 됐고, 16세 때 본격적으로 제다법을 전수 받았다.

신 명인의 다업은 군 제대 후 본격화된다. 10대 때 배웠던 차 제조법을 익히고 또 익혔다. 가마솥에 덖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다보니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였다.

개량종 차는 생산량이 많아 수지를 맞추기에는 좋으나 차의 질은 자연스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야생차를 전통의 방법으로 만드는 것을 고집하는 이유다.

신 명인은 “차를 시작하면서 ‘차는 나 신광수의 새로운 인생이다’라고 항상 되뇌었다”면서 “차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의 본(本)이었으므로 그 본을 잃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늘 ‘본을 사랑하자! 나 만이라도 천년의 세월을 함께 꽃피울 수 있는 본을 지키는 차밭을 조성하자’는 생각으로 차와 궁합이 맞는 땅을 선택하기 위해 7년을 고생했고 매입한 땅에 차밭을 만드느라 수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지난 1982년 신 명인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미국 대사관 직원에게 우연히 차를 대접한 것이 계기가 돼, 일본 다류 품평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이다. ‘차 마니아’일본 다인들에게 ‘최고의 차’로 인정받았다는 소식에 그가 만든 차의 우수성이 널리 소문이 났다. 또 직접 찾아와 차밭의 기운을 느끼며 명인과 함께 차를 만들어 보기 위해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신 명인은 “비교적 비싼 비용을 마다않고 차 만드는 체험을 한 후 방문객들은 그 차를 사간다”며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데도 그들은 무척 좋아했다”고 밝혔다. 6차 산업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신 명인이 순천 조계산에 위치한 차밭에서 야생 작설차 제조 비법을 설명하고 있다. /전남도 제공

◇전통식품명인 제18호 지정

현재 신 명인은 총 49만5천900㎡(15만여평)에 달하는 재래종 야생 차밭에서 자란 잎으로 차를 만들고 있다. ‘명인 신광수차’란 브랜드로 국내 유명 백화점은 물론, 일본과 유럽 등에 우리나라 고유차를 수출하고 있다.

잘 나갈때는 연매출이 10억원을 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외에서 주문이 쇄도하면서 지난 2000년 수출유망 중소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찻잎은 지난 2001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유기농산물 인증을 시작으로 지난 2008년 일본 유기인증(JAS),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50여년의 수제차 제다 경력을 인정받아, 지난 1999년 ‘전통식품명인 제18호’로 지정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하는 식품명인은 전통식품의 제조, 가공, 조리방법을 원형 그대로 보전해 시현하는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해당 분야에 20년 이상 종사해야 지정 받을 수 있다.

신 명인은 지난 2013년 (사)한국전통식품명인협회장에 올라 6·7대 회장직을 수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또 지난 2014년 선인들의 차에 관련한 지혜와 자신의 경험을 묶어 ‘신광수 명인의 우리 茶(차)이야기’를 펴냈다.

여기에 지난 2014년 식품·외식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 2015년 전남도 친환경 농업대상에서 가공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차에 대한 열정 ‘현재 진행형’

무엇보다 신 명인의 차에 대한 열정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신 명인은 10여년 전부터 차 열매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차 열매는 은행, 밤, 잣과 성품이 비슷하고 쓴 맛이 강해 고소한 맛의 다른 씨앗과 함께 볶아 먹으면 좋다”며 “차 열매에는 함암, 항비만 효과가 있는 사포닌 성분이 인삼보다 많아 관련 특허를 내고 제품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명인은 천년의 세월을 함께 웃고 살 수 있는 삽상한 기운 품은 그런 차밭을 꿈꾸며 산다고 전했다.

그는 “조계산 기슭 해방 700m 정도 되는 곳에서 생산되는 차가 생육 조건으로 최상”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 그는 “흔히 세계 3대 명차를 인도의 다즐링차, 스리랑카의 우바차, 중국의 무이차라 하는 데 그 공통점은 차밭이 고산지대에 있다는 점”이라며 “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차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이 자신이 맛 본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골라 글로 엮은 저작인 ‘도문대작(屠門大嚼)’에 ‘작설차는 순천이 으뜸이고. 다음이 변산’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나라 차문화에서 순천지역 차의 역사와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서부취재본부/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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