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이계홍 역사소설 깃발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66>제10장 의주로 가는 야망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66>제10장 의주로 가는 야망

정충신은 광주 목영 관기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다. 용모가 단정하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시원한 이마와 선명한 콧날에 늘 자신감이 있는 얼굴은 관기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광주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소년은, 그러나 먼 하늘을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를 꿈꾸며 살고 있다. 다른 총각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동헌 뜰과 화단을 쓸고 가꾸고, 하인들이 나르는 장작을 대신 한 아름씩 날라다 주었다. 망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단단히 현실에 뿌리를 박고 사는 모습이다. 그런 그를 보면서 기생들이 일부러 지나치며 손수건을 건네고, 먹을 것을 살짝 쥐어주고 갔다.

“내 나이 네댓 살만 줄일 수 있다면...”

“충신 같은 사람만 곁에 있으면 나도 한 세상 산다고 할 수 있을 것같애.”

“동생을 삼았으면...”

이렇게 기생들이 소년 지인 정충신을 바라보는데, 그중 월매향이 어느날 그를 불렀다. 월매향은 정충신보다 다섯 살이 위였다.

“오늘 저녁 나의 방에 오겠니?”

“글을 읽어야 하는디요?”

“내 방에 와서 읽어. 나도 문장을 좀 하거든.”

월매향은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었고, 시 짓기, 가무가 광주 목영에서 제일가는 기생이었다. 그래서 행수기생이었다. 가무 기생과 수청 기생을 관리하고 있는 신분이었다. 기녀들의 우두머리인데, 그녀의 미모에 빠진 광주 관아의 육방 관속, 나장, 군노 사령, 어찌어지 돈푼깨나 쌔비한 포교들이 월매향 문앞을 기웃거렸다. 부호들, 투전판에서 판돈을 싹쓸이한 건달들도 그녀와 한번 연사(戀事)를 엮으려고 돈 보퉁이를 들고 왔다. 어떤 자는 사또에 줄을 대달라고 금붙이를 한웅큼 안겼다.

“사방 공사를 나한티 떨어지게 해봐. 자네는 사또 녹일만한 인물이잖여. 뒤를 대줄탱개 잘 구슬려서 공사 꼭 따줘. 그러면 공사비 삼할까정 줘버릴 것잉개.”

그러나 그녀는 거절했다. 나름의 원칙과 기준이 있었으니, 민폐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 쏟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녀 역시 피해자 신분이어서 불이익을 당할 상대방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돈밖에 모르는 천 것이 아니여...

정충신이 월매향의 방에서 글을 읽자 월매향이 값진 음식을 차려왔다.

“마침 잔치집에 다녀왔어. 온갖 음식이 올라왔는디, 그중 벌교 꼬막, 흑산 홍어, 무안 낙지, 영광 굴비, 석곡 불고기, 그리고 인삼, 숭어알, 매실주를 가져왔어. 매실주 한잔 할래? 몇잔 묵으면 뿅 가버릴 것인디?”

“싫어요. 그게 모두 진상품 아니요?”

“진상품이라고 우리가 못먹으란 법 있간디?”

월매향은 임금님의 축일과 기념일에 바치는 진상품은 평민이나 상놈이 먹어선 안된다고 여기는 정충신이 좀 답답해보였다. 그것이 불충이며, 백성으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 꽉 막힌 샌님 같다. 그런데 정충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고것은 백성의 고혈을 짜서 올린 세금징수품이오. 백성의 고혈을 먹는 것은 당치 않지요.”

월매향이 빤히 정충신을 바라보았다. 힘과 권세와 돈 가진 자들은 우선 먹고 보자는 주의가 만연한데, 이 젊은 것은 그게 아니다. 결코 범상한 남자가 아니다.

“골 때리는 인간들이 많은디, 충신 총각은 다르네요이. 참말로 어른이여. 나이든 것만이 관록이 아닌가비여.”

월매향은 정충신이 함부로 접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올곧게 사는 사람,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 이런 사람은 평생 모셔도 될 남자 같았다. 돈 싸짊어지고 와서 하룻밤 어찌어찌해보겠다고 건방떠는 남자들을 보면 때로 토가 나올 때가 있다. 품위있고, 지적이며, 점잖은 남자. 나이가 어려도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그 남자가 바로 눈앞에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나이 차이가 많다. 자기보다 열 살, 수무 살 많은 남자는 맞상대할 수 있어도, 다섯 살 연하는 어쩐지 자신이 팍삭 늙어버린 것 같아서 주눅이 드는 것이다.

“정충신, 우리 사이에 누님, 동생으로 할까?”

정충신이 침묵을 지키자 월매향은 수용한 것으로 알고 기뻐했다.

“난 외로워. 황해도 재령이 고향인디 어려서 여기로 붙들려왔어. 아버님이 무슨 사건에 연루되어서 관아에 끌려가 죽고, 가족들이 천민이 되었어. 험한 세상, 사연없는 집이 없더마...”

그런데 그녀와 함께 한 다음날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투기한 기녀들이 퍼뜨린 소문이었다. 함께 잤던 것은 사실이고, 결백을 주장해본대야 새파란 떠꺼머리 총각과 기녀가 한 방에 있었으니 변명 자체가 입방아를 더 부채질한 꼴이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명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