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람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최혁<남도일보 주필>

최혁
사람일은 모른다 했다. 그렇다. 참으로 그렇다. 내 뜻대로 세상을 사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 뜻과 우연(偶然)이 마주하고, 그 작은 우연들이 겹치면서 삶이 바뀐다. 그것은 운명 또는 숙명이다. 운명은 인연과 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정된다. 때로는 장난스럽게, 혹은 잔인하게 내 삶을 파고든다. 길을 걷다가, 차를 타고 가다가,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졸지에 세상을 뜨는 이들이 많다. 운명의 다른 얼굴은 잔인하다.

그래서 매순간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다가오는 그 숱한 인연을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사람을 판단하고 가려야 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물론 진중한 처세도 필요하다. 현인들이 말하는 신독(愼獨)이 그것이다. 혼자 있어도 몸가짐과 생각을 흩트리지 않는 것, 신독은 결국 자신을 지켜준다. 욕망대로, 하기 쉬운 대로, 사람을 대하면 인연은 악연(惡緣)이 되기 쉽다. 그러나 다른 사람 속을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세상사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이론이다. 멕시코 만(灣)을 나는 나비의 날개 짓이 미국을 덮치는 허리케인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가 처음으로 제시한 이론이다. 나중에는 ‘세상일이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어떤 규칙성을 갖고 있다’는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됐다. 부부싸움을 한 상사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우리 곁에는 분명 수많은 ‘나비’가 있다.

지난달 30일 문재인대통령이 중폭개각을 했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들은 모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장관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 더 큰 공로는 ‘능력’보다는 ‘인연’이다. 그리고 더 크게는 운명이다. 그들이 장관이 된 연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계입문이다. 노무현의 등장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은 생각하기 힘들다. 정치판의 나비 날갯짓이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재상(宰相)자리를 안겨준 것이다.

어디 중앙정치판만 그런가? 광주·전남에도 ‘어쩌다 인연’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출세한 이들이 꽤 된다. 유력 후보자와 어찌어찌 맺은 인연으로 선거캠프에 끼어들어, 눈도장 열심히 찍다가 벼락감투를 쓴 사람들이 많다. 민선 6기만 하더라도 시장·도지사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서열·능력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떵떵거렸다. 그 후유증은 민선7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광주도시철도공사 등 광주시 산하 여러 기관이 막장인사와 운영으로 망가지고 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사람들이야 인연을 잘 가꿔 운명으로 만들었으니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잘난 사람들’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잘난 사람들 상당수는 실력이 안 되니 처세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더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고, ‘잘난 사람들의 갑질’은 강도가 더 세다. 그동안 받은 설움을 직원들의 과잉충성과 아부를 통해 보상받으려하고, 또 강요하는 행태가 매우 노골적이다.

깜냥이 안 되지만 인연으로 출세한 사람들은 과거 자신이 했던 아부를 그대로 받기를 원한다. 자연 아부하는 직원들을 곁에 두게 된다. 처세 잘하는 직원들이 요직을 맡게 된다. 능력 떨어지는 사람들이 주요직책에 있다 보니 기관효율성은 떨어지고 조직도 망가져 버린다. 나비효과의 부정적 측면이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하다. 조직을 살리는 것도 사람이고, 죽이는 것도 사람이다. 상사와 부하를 하루아침에 바꿔버리는 그런 독심(毒心)은 결국 인격살인을 부르고 조직을 죽인다.

사람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난사람과 든사람, 그리고 된사람이다. 난사람은 입지전적인 사람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 배운 것은 없으나 처세를 잘하고 수완이 좋아 크게 성공한 사람이다. 든사람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된사람은 인간적인 사람이다. 남의 사정이 딱하면 손해를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은 된사람이다. 난사람이 많으면 세상은 어지럽다. 든사람은 허깨비인 경우가 많다.

물론 난사람, 든 사람 중에도 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리 많지 않다. 기자 생각으로는 세상이 평안해지려면 된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 출세했어도 부모와 이웃을 돌보지 않으면, 이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다. 처세술과 친구의 후광을 입어 출세한 사람보다는 ‘자리는 변변찮아도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는 된사람’이 더 낫다. 오만의 몸짓들이 광주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들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을 모를까? 겸손이라는 나비짓이 평화를 부르는 세상이 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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