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68>제10장 의주로 가는 야망

그의 장형 김판돌은 포졸들에게 맞아죽고, 그 아우 김막돌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 무렵 고을에 힘쓰는 자, 장골인 자는 무조건 잡아들이라는 소문이 돌더니 군졸들이 고을로 쏟아져 들어와서 이들을 잡아갔다. 육척 장신의 거구에 역사(力士)인 김막돌은 관군을 피해 은신했다. 장형이 도끼 들고 관아에 쳐들어갔다가 맞아죽었는데 아우 김막돌도 연좌에 묶여 잡히면 죽는 신세였다. 그런데 거기에 장골인 것이다.

“고새끼들이 키크고 힘좋은 자를 때려잡으려 한 것, 왜 그러는 중 아네?”

정충신은 모르는 일이어서 고개를 저었다.

“왕들이 불안해서 우리 같은 장사를 역모 혐의를 씌워 죽이려는 거디. 기래서 고을마다 힘을 쓰는 장골들을 찾아내 잡아죽이는 거래이. 장형을 억울하게 잃은 난 분이 났지만, 목숨 부지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숨어 살았디. 난군일수록 힘쓰는 자가 수난을 당하는 세상이야.”

“이런 전쟁통엔 장골들을 불러서 써먹어야 하는디, 그게 아니라 잡아죽인단 말이요?”

“그러게 말이다. 너의 고장에서 일어난 기축옥사 모르네? 그 사건은 황해도관찰사 한준과 재령군수 박충간, 안악군수 이축, 신천군수 한응인이 황해도 젊은이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벌인 사건이기도 하디. 홍문관 수찬을 지낸 전주사람 정여립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해서 기축옥사가 났잖네. 고런데 이 자들이 정여립 선생의 대동계에 참여한 황해도 젊은이들을 조정에 고변해서 숙청이 이루어진 거이야. 기축년 말, 그러니까니 삼년 전 일이누만. 정여립 일당이 도성에 쳐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구 모략해서 터진 사건 있잖네?”

황해도 고을 수령들로부터 밀서를 받은 조정에서는 선전관과 의금부도사를 황해도에 파견하여 안악의 변숭복과 그의 제자 조구를 잡아 문초하여 자복을 받아냈다. 이를 근거로 의금부도사와 선전관들이 다시 진안의 죽도로 달려가 정여립 체포 작전에 나섰고, 그 아들 정옥남을 생포해 문초하니 나주의 길삼봉이 모의 주모자이고, 해서사람 김세겸·박연령·이기·이광수·변숭복이 공모했다고 자백하였다. 안악·재령·신천군수의 고변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었다.

이때 해서지방의 힘깨나 쓰는 젊은이들이 일망타진되었는데, 그중 일부는 구월산으로 숨어들어 갔다. 이후 구월산은 임꺽정, 장길산 따위의 대도들 소굴이 되었는데, 때로 나라를 위협할 정도로 위세를 떠니 조정은 해서지방을 반란의 고장으로 낙인찍고, 연중행사로 대대적인 젊은이 소탕작전을 벌였다. 키가 크면 변장한 줄 알고 여자도 때려잡는 형국이었다.

“이 새끼들이 자기들 못난 정치는 탓하지 않고 생사람 잡아갔던 거이야.”

기축옥사는 정충신이 열네살 때의 일이었으니 사건은 알고 있었으나 그 중심에 황해도 젊은이들이 대거 참여해서 터진 일이라는 것은 몰랐다. 이 일로 정여립 세력인 동인계열의 고관들과 호남지방 사류가 연좌되어 1,000여명이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전라도에서 일어난 기축옥사에 대거 참여한 사람들이 안악·재령·신천 젊은이들이라는 거 알았니? 그들의 정의로움이 만방에 퍼진 것이야. 젊은이들을 데려다 유용하게 써먹으려고는 않고 역모를 꿈꾼다고 잡아가두고 족치는 나라가 어딨냐. 그러니 왜란이 나도 맥 한번 쓰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것이디.”

김막돌도 나이 열여덟이 되자 큰 키에 우람한 체격을 갖추었다. 어떤 누구와도 맞짱뜰만큼 힘이 좋았다. 군인의 길을 가면 장수가 될 몸이었다. 장대한 몸으로 보면 진작에 군문으로 나섰어야 했다. 그런데 형이 죽고, 그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행불이 되고, 그 역시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못된 나라에 태어나니 몸이 큰 것도 죄가 되누만. 이런 상놈의 나라가 어디 있네? 안그러네?”

젊은이가 불뚝불뚝 용솟음치는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나라. 불순분자로 보고 학대하는 나라, 그러니 산에서 무의미한 힘겨루기를 반복하며 헤매고 있다.

“아재, 여기서 묘향산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영변·희천의 묘향산맥 중심부에 있으니까니 이 백리는 될 거야. 왜 묻니?”

“거기 보현사로 가십시다.”

“보현사? 거기엔 걸노(乞奴)들이 모여있다는 곳 아니네?”

“아니지요. 조선 승병의 근거지를 걸노 집단이라고 부르면 곤란하지요. 금강산의 유정, 지리산의 처영 의승군을 묶은 휴정 어르신이 거기 계시당개요. 묘향산으로 가지 않겠소?”

“나는 홀로 밀림을 다니는 고독한 범이여.”

“나라를 위해서 힘을 써야 항개 가야 혀요. 뭉쳐야제라우. 산속에서 혼자 포효하면 무의미하게 힘을 낭비하는 꼴이오. 무공을 쌓으면 광주 질녀도 데려올 수 있을 것이요.”

신기한 듯이 김막돌이 정충신을 바라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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