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티의 노래

최유정<동화작가>

최유정
작가초청강연 때문에 충청남도 공주에 갔다. 지난 4월 출간된 ‘녹두꽃 바람 불 적에’를 추천도서로 읽은 충청남도 공주 소재 모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낸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이유와 상황 탓에 우리 아이들이 책과 멀찍이 떨어져 지내고 있는 요즈음, 아이들이 부르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열일을 제치고 가야 했다. 책이라곤 교과서와 참고서 밖에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동화가 사라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마땅히 다해야 했다.

아이들이 읽은 ‘녹두꽃 바람 불 적에’는 동학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동학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촛불항쟁이 한창일 때 써서 그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끄는 주체는 민중이다” 라는 확고한 믿음 때문인데 그래서일까? ‘녹두꽃 바람 불 적에‘의 주인공은 당연히 전봉준이 아니라 “전봉준을 살린 마을 사람들”이어야 했다.

나는 국가 살림을 떠받치는 주춧돌이면서도 정부나 관리들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숱하게 받고 생활해야 했던 당시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었다. 또한 그 부당함에 짓눌려 있지 않고 끝내 떨쳐 일어나 형편없이 무너진 세상을 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해주었다.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나 역시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물론 그 시절의 고통과 좌절에 대해, 희망과 감동에 대해 충분할 만큼 이야기하기엔 주어진 2시간이 너무 짧았다. 하지만 아이들과 나는 19세기, 조선의 역사를 다시 쓴 사람들과 덕분에 다시 조우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흡족하고 행복했다.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는 아이들을 두고 나서는 길이 그래서 무척 아쉽고 서운했다.

아이들과 만나고 동학농민군들과 조우한 감동을 되새김질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 중에 나는 문득, ‘우금티’ 라고 쓰인 이정표를 발견했다. 우금티? 익숙한 듯 낯설었다. 이미 늦은 시각이라 밤 운전을 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지만 나는 한참을 가다 말고 차를 되돌렸다. 우금티를 보지 않고 그냥 가면 후회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유턴을 해서 다시 우금티로 되돌아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우금치라는 지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우금티는 우금치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었다. 우금티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아파왔다. 대학 시절 목 놓아 부르던 노래가 저절로 떠올랐다.

‘우금티’는 내 생각대로 ‘우금치’였다.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기습, 점령했다. 동학농민군은 이 소식을 듣고 추수를 마치자마자 전국적인 규모로 다시 봉기를 계획한다. 전봉준이 이끄는 남접 농민군과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 농민군이 충청도 논산에 집결, 일본군과 한판 전쟁을 치르게 된다. 동학농민군은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우세한 화력으로 압박해 오는 일본군과 정부군의 연합세력을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동학농민군은 죽창을 들고 끝까지 싸우며 저항한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동학농민군은 우금치 전투를 끝으로 퇴각을 하게 된다. 거듭된 퇴각 속에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이 하나둘씩 체포되면서 동학농민전쟁은 끝내 막을 내리게 된다. 즉, 우금치 전투는 동학농민군의 마지막 전투이며 우금치 전투를 끝으로 동학농민전쟁은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우금치’는 초라했다. 텅 비어있는 공간에 기념탑만 덩그러니 하나 있을 뿐, 제대로 된 안내문조차 없었다. 평상시 관리를 하지 않는지 쓰레기며 오물들이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었다. 기념탑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동안에도 파리떼가 앞을 막아설 정도였다.

나는 몹시 슬펐다. 우금치가 너무 초라해서 슬펐고 우금치가 너무 쓸쓸해서 슬펐다. 우리가 승리한 역사, 가진 자의 역사, 군림하는 자의 역사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가, 되묻고 싶었다. 강연을 끝내며 아이들에게 “역사의 주체는 너희들이다. 너희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만들어 가는 거야” 라고 말했던 것이 무책임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는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누군가에 의해 감춰져 있던 역사를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건 사람들,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쓴 사람들, 공동체의 일원으로 제 역할과 의무를 다한 사람들, 불의에 저항한 사람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기억해주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역사, 일한 만큼 제대로 된 보장을 받는 역사, 그런 역사를 또한 만들어 가야 한다.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우금티’!

이제라도 우금티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었으면 좋겠다. 그럴싸한 벤치도 가져다 놓고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난 안내문도 다시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금티의 역사가 20세기 민중의 역사를 활짝 열어젖혔음을 우리 모두가 공주 우금티 동산에서 확인하고 감동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입에서 절로 ‘이 산하에’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대학시절 즐겨 불렀던 우금치 전투 노래였다. ‘불타는 녹두 벌판에 새벽빛이 흔들린다 해도, 부딪히는 저 강물 위에 아침 햇살 춤춘다 해도, 나는 눈부시지 않아라’ 부르는 그대로 노래 구절구절이 가슴에 새겨졌다. 모처럼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가 참,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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