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70>제10장 의주로 가는 야망

정충신이 어이가 없어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윤인옥이 다시 큰소리쳤다.

“눈 깔아! 아작내버리기 전에...”

“왜 그러시오. 나가 무슨 실수라도 했소?”

“촌놈의 새끼가 겁 없이 까불고 있어. 장인 어른이 귀여워해준다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니까. 너 저번 의주 올라왔을 때 주상 전하께 주접떨었다며? 쌍판대기 들이밀고 어리광부렸다며? 좁만한 것이 정말 골 때려. 야 이 새끼야, 여기가 어디라고 나대냐? 행재소라도 궁궐은 궁궐이야. 함부로 굴면 쥐도새도 모르게 가는 수가 있어. 나부터 가만 안두지.”

윤인옥은 공연히 적의감을 품고 있었다. 왕을 대거리할 부류는 엄연히 따로 있는데 광주 촌놈이 와서 행재소를 흔들어 놓다니? 명문가의 자제인 자기도 함부로 범접 못하는데 촌놈의 새끼가 왕의 수염을 잡고 노닥거린다는 게 참아줄 수 없는 것이다.

“왜 맬겁시 그러냐고요?”

“눈깔 안깔 거야?”

한 방 먹일 요량으로 윤인옥이 그의 앞으로 발을 디밀었다.

“이런 씨벌놈, 참다 봉개 별 지랄염병 다 하고마이.”

그렇게 속으로 씨부리며 정충신이 일어나 그의 앞에 우뚝 섰다. 여차하면 한방 먹일 심산이었다. 이런 문약(文弱)에 약골은 입만 살았지, 주먹 한방이면 끝이다. 이래봬도 무등산 멧돼지를 맨 손으로 잡은 실력 아닌가.

윤인옥은 스물세 살 청년이라도 운동부족으로 하체가 부실하다, 나이 어려서 소년 등과해서 글은 줄줄 욀지 모르지만 새 다리에 걷는 것도 노상 흐느적거린다. 이런 자는 성문다리 한번 걷어차면 끝인 것이다. 이항복 대감의 외동딸과 혼인했어도 오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이 하나 생산 못하는 걸 보니 약골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니 마누라하고 제대로 방사(房事)라도 하냐?” 하는 마음으로 정충신이 그를 노려보자 윤인옥이 뻘쭘해졌다. 의외의 저항에 주춤해지는 것이다. 그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너 장기 둘 줄 아냐?”

“아요.”

정충신이 당차게 받아넘겼다. 담력도 없는 것이 큰소리친다고 생각되자 정충신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런 때일수록 뽀대있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물고 떡하니 버텼다.

“내일 장기로 겨루자. 네가 지면 여기서 나가고, 내가 지면 이 방을 너에게 물려주마.”

“나는 그런 내기는 안하요. 이미 병판 영감이 내준 방인디요?”

“장인 영감이 내주었다고 해도 주인은 나야. 내가 싫다는데 어쩔 것이야? 그러니 정 그렇다면 내기로 결판 짓자구. 너는 통군정 군사부 훈련도감에서 병사훈련 받는다문서?”

그는 장인 어른에게서 얘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무과 급제의 직방향을 이 자에게만 가르쳐주니 그런 것도 그로서는 불쾌했다. 이 자가 온 뒤로 이상하게 장인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같고, 사위 대접도 안하면서 이 자를 아끼는 것 같다.

지난번 정충신이 의주 왔을 때부터 장인 영감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윤인옥은 생각했다. 광주 고을에서 장계를 품고 왔다는 촌놈에게 흠뻑 빠져서 툭하면 주상전하에게 데리고 가고, 또 퇴근해서는 “어찌나 다부지게 주상전하께 의견을 올리는지 내 생전에 그런 영특한 어린 총각은 처음 보았네” 하며 촌놈 자랑을 늘어지게 하는 것이다.

정충신이 고향에 내려간 어느날 장인 어른이 술김에 “내가 그 놈을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러면 그 자한테 딸을 주는 것인데...” 하고 아쉬워하는 말을 했다는 걸 전해듣고, 윤인옥은 그놈을 패죽이고 싶었다. 그놈 때문에 사위놈은 똥묻은 막대기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얼굴도 새까맣고, 그래서 눈만 반짝이는 촌놈이 진짜 사위가 된 듯해서 사람 자존심 팍 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놈이 다시 돌아왔다. 불같은 질투심으로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은데 올라와서는 또 그의 글방까지 차지하고 나자빠져 있다.

“내 말 안들리나? 장기로 결판 내잔 말이다.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

“좋습니다. 그럼 내기는 목을 걸기로 하지요.”

“뭐? 닭모가지도 아니고 사람 모가지?”

“그러요. 하려면 사나이답게 그렇게 걸어부러야지요. 까짓거 목숨 하나 일찍 죽냐, 나중 죽냐의 차이인디 인생 뭐 별 것 있겄소?”

윤인옥도 자존심이 있는지라 지지 않고 말했다.

“좋다, 내일 아침 먹고 겨루자. 바로 이 방에서.”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두려움 때문인지 조금 떨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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