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집 지역미래연구원장의 일본 큐슈 탐방기>

③‘지방자치와 평화를 찾아서 나가사키, 시모노세키에 가다’

원폭의 도시 나가사키…평화의 도시로 탈바꿈

나가사키 짬뽕과 국제문화관광도시로도 유명

조선 노동자들 섬에 갇혀 강제노동의 아픈 역사

시모노세키 시민활동센터의 마을만들기 ‘눈길’

“내년 5·18기념식에 UN 대표 초청 추진했으면…”

일본 나가사키 야경. 원폭의 도시 나가사키는 현재 평화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에서 중심을 이루는 평화도시다. 국제문화관광도시로도 지정된 곳이다.
김영집 원장
남도일보는 지방분권시대 지역발전의 방법을 찾기 위해 김영집 지역미래연구원장의 일본 큐슈지방 탐방기를 3회 연재하고 있다. 1회는 ‘지역발전 모델을 찾아서 후쿠오카, 다케오, 유후인에 가다’, 2회는 ‘자동차산업 활성화를 위하여 기타큐슈 자동차공업도시에 가다’, 3회는 ‘지방자치와 평화를 찾아서 나가사키, 시모노세키에 가다’ 등이다.

지난 두 번의 탐방기를 여러 사람들이 관심 있게 읽어주고,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두 번의 탐방기를 일본의 해당도시에 번역해 건네니 해당 시 관계자들로부터 감사의 메시지를 받았던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얼마 전 광주광역시장께 부산시가 지자체 차원에서 해외외교를 강화하고 있는 사례를 들면서 광주광역시가 중국의 선전시와 시안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일본의 큐슈시, 베트남의 하노이시 등 주요도시들과 교류를 맺기를 희망한다는 건의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글로벌시대에 지자체의 해외교류는 새로운 힘의 원천이고, 능력이기 때문이다. 남북의 문이 열리게 된다면 지자체의 남북교류활성화 또한 최대의 과제다. 이런 일을 할 우리 지자체의 전문가 확보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런 일을 매우 잘하고 있는 도시가 큐슈지방에서 나가사키시다. 일본의 변방 나가사키가 국제적인 교류를 잘한다고? 그렇다. 나가사키는 지금 평화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에서 중심을 이루는 평화도시다. 이제 나가사키로 가 볼 차례다.

나가사키 원폭천. 원폭으로 죽은 수많은 시체들로 가득 채워진 이 하천 벽면에 평화를 염원하는 그림들이 걸려 있다.
하카타에서 서둘러 나가사키로 향하는 JR기차를 탔다. 2시간쯤 걸려 나가사키역에 도착해 간코도리 근처 숙소로 가 여장을 풀었다. 몹시 피곤했지만 근처에 있는 차이나타운이 문 닫기 전에 한번 둘러보러 갔는데 방문객이 드문 주중이어서 그런지 오후 8시경이었는데도 거의 문을 닫았다.

한국에서 나가사키가 친숙한 것 중 하나는 나가사키 짬뽕 때문이다. 나가사키 짬뽕은 1899년 중국에서 건너 온 천핑순(陳平順)이라는 사람이 개발한 요리로 진한 육수에 고기, 어패류, 채소 등을 듬뿍 넣고 쫄깃한 면발 기술이 결합한 중일합작요리라 할 수 있다.

밤 산책을 겸해 일본 쇄국시대 200년 동안 유일하게 서양과의 교류를 허용한 데지마를 한 바퀴 돌며 나가사키가 일본에서는 항구도시이자 국제적 관문의 역할을 한 독특한 도시라는 것을 느꼈다. 데지마는 서양의 그리스도교 포교를 막을 목적으로 시내에 흩어져 살던 포르투갈인들을 한데 모아 만들어 격리시킨 인공섬이었다.

문명이라는 것은 참 묘한 것이다. 쇄국을 했고, 천주교 탄압으로 순교지가 되기도 했으나 나가사키는 무역항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도시가 되었고 번성했다. 이로 인해 수산업 외에도 조선, 제강, 전기, 기계공업이 발달했고 미쓰비시 중공업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나가사키는 국제문화관광도시로 지정되었으니 아무리 폐쇄한다고 한들 문명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평화공원 안에 있는 원폭순교자봉안비.
그리고 나가사키 공업의 발달은 결국 가장 가까운 조선식민지의 노동자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강제노역을 시킨 도시, 특히 최근에 상영된 ‘군함도’라는 영화에서처럼 조선인 노동자들이 섬에 갇혀 강제노동과 처참하게 죽어간 나쁜 오명의 역사를 남긴 나가사키로 남아있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미쓰비시 중공업은 강제징용 조선인 피해자 배상을 아직도 하고 있지 않은 채 재판중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가사키 시내를 운행하는 노면전차를 타고 평화공원을 방문했다. 사실 나가사키에 온 목적은 바로 이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평화공원 안에 있는 원폭순교자봉안비에 추모의 묵념을 하는데 간간이 찾아온 방문객들의 참배도 이어진다. 조각가 기타무라 세이보가 1955년에 제작한 웅장한 평화기념상은 오른손은 원폭의 무서움을, 왼손은 평화를 바라는 모습을 기원하는 형상으로 지어져 있었다.

특별히 공원에서 내 눈길은 끈 것은 공원 옆 작은 평화의 천 벽면에 전시된 초·중·고 학생들의 평화를 기원하는 대형 그림이었다. 평화공원은 원폭 피폭 폐허지였고, 그 하천은 당시 원폭으로 죽은 수많은 시체들로 가득 채워진 하천으로 거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그림을 담은 곳이었다.

원폭으로 무너진 우라카미 성당을 지나 계단을 올라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을 관람했다. 1945년 8월 9일 11시 02분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과 그 피해의 적나라한 모든 것이 사진과 유물과 해설로 전시되었다. 그리고 원폭의 피해실상과 피해자, 이후 처리과정, 현재 세계의 핵과 위기요인,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관이었다.

그날 평화공원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평화’라는 제목의 시를 남겼다.

‘이것은 지옥도였다’/나가사키 원폭 한발로/7만4천명이 죽었고/7만5천명이 부상당했다/단 한 번으로/15만명의 시민이 죄가 있나/하느님도 어쩌지 못한/성당의 목 떨어진 마리아/그들이 죽고 다칠 이유가 무엇인가(중략) 버섯 재 구름/폐허로 덮인 도시/시체로 가득한 거리와 하천/그리고 또 방사선 폭풍 열 피해로/평생의 고통을 짊어진 피폭자들/눈 깜짝할 사이 사라진 세상/사람이 가진 물질도 정신도/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재앙/다시는 없어야 할 세상이/지금 다시 계속되고 있다(중략)

자료관은 피폭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96년 4월에 설립되어 나가사키 시민은 물론 전세계인 방문객들이 방문하는 필수코스가 되었다.

나가사키시는 이러한 비극적 역사를 통해 ‘평화는 나가사키로부터’를 내걸고 나가사키를 평화도시로 만들려고 오랫동안 노력하고 있었다. 이미 나가사키시등이 주도하는 ‘세계평화시장회의’는 1982년 시작 이래 현재 163개국 7천650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다.

시모노세키 시청의 시민활동지원센터.
내가 방문하기 얼마 전 8월 9일 나가사키 평화공원에서는 피폭 73주년 나가사키 희생자위령평화기념식이 열려 유엔 사무총장이 최초로 참석했고, ‘나가사키 평화선언’과 ‘평화를 위한 호소’ 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 선언에는 일본의 평화를 위한 노력은 물론 판문점선언 등 한반도의 비핵과 평화의 진전이 동북아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평화도시를 향한 나가사키의 노력을 보면서 우리 광주시도 세계적인 민주인권도시 네트워크를 더욱 확장하고 5·18기념관, 유적지, 자료관 등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청소년 평화 자원봉사자 육성’과 ‘청소년 평화포럼’ 등으로 다음 세대의 평화인재를 육성하는 나가사키처럼 우리 역시 다음 세대 청소년들이 민주인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대책마련도 필요하지 않을까. 내년 5·18기념식에 민주인권평화를 위해 UN 대표가 참여하는 방안도 한번 추진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평화의 도시 나가사키를 뒤로 하고 나의 기행의 마지막 지점인 시모노세키로 기차는 달려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온천도시 뱃부와 오이타현을 지나 열차는 다시 기타큐슈를 거쳐 시모노세키에 도착했다.

태풍이 지나간 도시의 하늘은 푸르고 맑았으나 햇볕은 뜨거웠다. 내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시모노세키 시청의 시민활동센터였다. 시모노세키는 큐슈지역이 아니라 혼슈(本州) 야마구치현의 인구 26만명 정도의 중소도시다. 그런데도 이 도시가 유명한 것은 육해 교통의 중심지인데다 일본의 대륙침략의 문호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시민활동센터는 비영리시민단체나 자원 봉사 활동 등의 활성화와 행정과 시민단체가 연계한 마을 만들기사업을 잘 진행하고 지원하기 위해 2007년 5월에 개설됐다. 이 공간은 등록한 시민단체의 회의, 강좌 등 행사공간을 제공하는 한편 시민단체의 정보를 교환하고 제공한다. 무료는 아니고 최소사용료로 사용 가능하다. 특히 시작단계의 시민단체활동을 지원하고 시민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로 보면 NGO센터와 역할이 비슷한데 시가 직접 지원하고, 인구대비 공간이나 관리인원도 훨씬 많다는 점이다.

특히 시모노세키는 ‘건강한 시모노세키’를 내걸고 2011년부터 지역분권추진연락회의를 두고 지역만들기에 주민의 참여와 협동을 얻어 ‘시모노세키 지방분권추진방향’을 책정했다. 이것은 행정의 권한을 보다 작은 행정단위로 이전하는 분권과 주민의 자주적인 참여와 자치에 의한 분권 두 방향에서 추진하여 지역만들기에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우리 도시에 없는 시모노세키만의 특색으로 2002년부터 ‘시민활동보험’제도가 있어 민간비영리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활동상의 사고나 재해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이런 제도는 우리 사회에서도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