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73>제10장 의주로 가는 야망

백사 이항복 대감은 퇴궐하면 늘 하던 대로 사랑으로 들어갔다. 사랑채에는 아무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요며칠 사이 그는 정충신을 사랑채에 불러 앉혀놓고 사서오경(四書五經), 춘추좌전(春秋左傳), 사마천의 사기, 제자백가 등의 명서(明書), 무경칠서(武經七書)와 같이 무장들이 알아야 할 병서들을 읽도록 하고 훈을 내려주는 것을 즐겨하고 있었다. 문제를 내면 곧바로 풀어내고, 병서를 달달 외는 정충신을 보고 그는 무릎을 탁 쳤다.

“과연 한 인물 할 것이렸다!”

지금까지 그의 문하에서 공부하는 제자 중 이렇게 명민하고 똑똑한 두뇌를 갖고 있는 제자는 드물었다. 그래서 내심 명장으로 키울 요량으로 오늘은 무경칠서와 장감(將鑑)을 읽도록 한 뒤 몇가지 문제를 낼 생각을 하고 일찍 퇴청했다. 한달 후면 무과시험이 있는 날이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 지도를 하기도 전에 정충신이 먼저 어려운 문자를 해석하는 데 막힘이 없으니 무과 급제는 필연으로 보지만, 자기가 기른 제자란 점에서 당당하게 장원 급제를 해야 했다. 그래야 병조판서 빽이니 정실이니 따위의 허접한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마당에서 무술과 마술을 보이도록 했는데, 정충신은 이치전투 경험을 살려 실전에 능한 면모를 보였다. 쏜살같이 건물을 돌아나와 칼을 쓰는 검기(劍技)는 완벽에 가깝고, 달리는 마상에서 활을 쏘아 백보 앞의 사과를 궤뚫는 궁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무과 시험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내리라고 믿어지는 실력이었다. 그런 청년을 보는 것은 기쁨이고, 난세에 신음하는 조국의 내일을 기약하는 기대감을 한껏 안겨주었다.

“장인 어르신이 보는 눈은 역시 계시군. 선견지명이 높으신 분이야.”

백사의 장인 권율 목사가 다듬으면 나라의 간성으로서 우뚝 설 것이라고 보고 정충신을 그에게 보낸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필히 장수답게 기르리라.”

이렇게 마음 먹고 있는데 내당 쪽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났다. 하인 마당쇠나 하녀 쇤네가 일하다 싸우는 것 같은데 듣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에그머니나, 그러면 안돼. 제발 거두어라. 내가 이렇게 빌 테니 거두어라.”

그 목소리는 분명 정경부인의 목소리였다. 이항복이 조복(朝服)도 벗지 않은 채 내당으로 급히 달려들어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

정충신이 안방을 향해 칼을 겨누고, 그의 내자 정경부인이 사색이 되어서 사위 윤인옥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윤인옥이 장모 뒤에 숨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이항복 대감이 거듭 벼락같이 소리치며 가까이 다가갔으나 정충신은 끄떡하지 않고 장검을 정경부인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충신아, 무슨 일이냐? 검을 당장 거두고 말하거라.”

정충신이 대답도 않고 장검으로 계속 안방을 노리다가 외쳤다.

“사내 대장부가 비겁하게 장모님 뒤에 숨어서 목숨 부지하려 하다니! 꼬장 부리지 말고 사나이답게 나와서 목을 내놓으시오!”

“부인 어떻게 된 일이오?”

이 대감이 정경부인을 닦아세웠다. 이러다 자칫 사람 목숨 하나 날려버릴 것같다. 정경부인이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잘은 모르지겠지만서두 두 사람이 목을 걸고 장기를 두었다고 하는군요. 사위가 져서 목을 내놓아야 하는데 나한테 와서 숨는구려.”

“에라이 못된 놈!”

이 대감이 당장에 달려들어 부인 뒤에 숨어있는 윤 교리를 끌어내 툇마루에 꿇어앉혔다.

“대장부가 약속했으면 그대로 실행해야지, 비겁하게 장모 뒤에 숨어? 네가 진정 내 사위냐? 충신아, 당장 이 자의 목을 쳐라!”

이항복이 크게 노기를 띠고 소리쳤다. 정충신이 주춤 한발 뒤로 물러서서 무릎꿇은 윤교리를 노려보았다. 윤 교리는 온 몸을 떨고 있었다.

“뭘하고 있느냐, 당장 목을 치지 않고! 어서 치렸다!”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정충신이 얏! 기합을 넣고 장검을 허공에 크게 한번 휘두르더니 윤인옥의 두상을 향해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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