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화 광주대 교수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시간과 햇살

문상화<광주대학교 교수>

우리가 시간과 햇살이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희한한 정부가 있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스무 시간으로 정하고 누군가에게는 스물다섯 시간으로 정하려 한다면 이를 수용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햇살 또한 마찬가지이다. 벌판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에게나, 산꼭대기에 서있는 사람에게나 쏟아지는 햇살은 공평하다. 햇살이 비추는 양이 똑같기에 우리는 공평함을 느낀다.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 여럿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억울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억울함은 공정하지 않다는 감정에서 출발한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면 억울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 쌓이면 실망이 되고, 그 감정을 지나면 조소가 된다.

이번 아시안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몇 개 따느냐보다, 누가 금메달을 따서 병역을 면제받는가가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인기스포츠인 축구와 야구의 경우에 극명하게 대조되는 상황으로 해서 더욱 시끄러웠다. 손흥민의 경우 금메달을 따면 병역의 족쇄에서 풀려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맞을 것이라는 기사가 주류를 이루는 반면, 오지환의 경우 대표 팀에 선발되는 과정과 실제 아시안 게임에서의 활약에 의심이 가면서 그가 얻은 병역혜택이 도마에 올랐다.

팬들은 잘하는 손흥민과 못하는 오지환을 보면서 ‘군대 안가도 되는 손흥민’과 ‘군대 가야하는 오지환’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지환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국가가 정한 정당한 절차에 따라 병역에 관한 문제를 해결했을 뿐이다.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행동을 하고 법이 정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뿐이니 적어도 겉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역으로 “당신들도 나같은 경우라면 얼마나 다르게 행동하겠나?”라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릇 모든 국가는 다른 나라의 영토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현대에 들어 무력으로 다른 나라의 땅을 점유하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어떠한 형태든 남의 땅에 욕심을 가지는 것은 줄지 않았다. 이러니 자국의 영토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인 명제가 되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한 나라는 국방이 나라의 결정적 요소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방의 의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이 필수상황을 선택으로 바꾸면 국가에 대한 믿음이 공평에서 억울함으로, 심하면 조소가 된다.

프로선수는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뛰고 있는 프로선수에게 잘한다고 해서 국가가 상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전성기의 기량이 군복무로 인해서 훼손된다고 한다면, 군복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다른 군인들의 나이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들 또한 이십대의 싱싱한 기간을 국가를 위해 바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갓 입대한 이병이 금메달을 땄다고 선임들을 제치고 전역하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부대원들의 사기는 어떠할 것인가. 금메달을 따서 국위를 선양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금메달을 주지 않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혜택에서 배제된 상태이니, 이런 규정은 전형적인 불공정에 속한다.

한 가지를 잘 한다고 해서 다른 한 가지를 면제하는 것은 곤란하다. 둘의 상관관계가 없을 때는 더욱 곤란하다. 프로선수가 운동을 잘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것이 국민의 의무를 면제시키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가 면제받은 혜택을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국가가 스스로 불공정을 부추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제대회에서 딴 메달수로 국력을 환산하려는 착각에서 벗어날 만큼 성장했다. 그러니 병역면제에 관한 낡은 법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시간과 햇살이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공정한 것처럼 모두에게 공정한 병역법의 시행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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