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76>제10장 의주로 가는 야망

“저것들 노상 이런 행패다. 남쪽은 왜놈 등쌀에, 북쪽은 되놈 등쌀에 죽을 판이다.”

윤인옥이 술을 마시다 말고 말하는데 정충신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명군 졸개들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간나구 새끼덜, 여기가 어디라고 주접 떠냐? 이 여자에게 손대지 마!”

말귀는 못알아 듣지만, 조선놈이 대든다는 것쯤 알고 있는 군졸들이 껄껄 웃으며 정충신에게 다가섰다.

“처우니마!(씨발), 이마빡에 솜털 보송보송한 애송이가 나서는구만? 아기야, 넌 여기서 술마실 것이 아니라 니 마마한테 가서 젖이나 빨아.”

그러자 곁에 섰던 명군 졸개들이 덩달아 와크르 그릇깨지는 소리로 웃었다. 사뭇 조롱이었다.

“이런 씨벌놈들아, 좃탱이가 부었어? 여자한티 손대는 느자구가 어디 있냐고? 당장 안물러서?”

순간 키 큰 군졸이 “싸비(동북지방의 씨발)” 어쩌고 하며 나서더니 정충신의 엉덩짝을 걷어찼다. 그리고는 또 그들끼리 왁자지껄 웃었다. 완전히 놀이갯감이 된 기분이었다. 다른 놈이 말했다.

“예의도 없이 술집년 가로채간 네놈들이 더 나쁘지, 우리가 나쁘냐? 술집년은 선취득권자(先取得權者)의 것이란 것 모르나? 먼저 취한 자의 것이란 말이다!”

정충신도 상세한 것은 모르나 그를 야유하는 것쯤은 알고 대거리했다.

“야 이 호로 개새끼들아! 남의 나라에 왔으면 점잖게 술을 마실 일이지, 연약한 여자 델꼬 무슨 개지랄이냐고? 콱 뽀사불기 전에 물러나! 여자는 연약항개 그렇게 다루는 것이 아니랑깨!” “니가 물러나라. 군니마드!(엄마 젖이나 빠는 놈아)”

“니들이 물러나. 안물러나면 욕 좀 볼 것이여.”

정충신이 소청을 뒤에 세우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한 놈이 정충신을 제치고 소청을 잡아당겼다. 그녀 저고리가 찢어져 풍성한 우윳빛 젖이 드러났다.

“와...” 하고 젊은 되놈들이 웃는 가운데 한 놈이 정충신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정충신이 재빨리 피하면서 부뚜막 곁에 있는 작대기를 들어 한바탕 휘둘렀다. 순식간에 세 놈이 머리통을 싸매고 고꾸라졌다. 타다닥, 그가 휘두르는 작대기에 놈들이 한결같이 대가리에서 피를 쏟더니 쓰러진 것이다. 정충신의 검술은 무등산에서 익힌 솜씨였다. 작대기 하나로 멧돼지를 잡은 실력이었다. 원효사 옥암대사로부터 익힌 무술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윤인옥 교리가 뛰쳐나와 정충신 곁에 서며 품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정충신이 그것을 잡아채 단번에 술방 기둥을 향해 던졌다. 단검이 피융- 소리를 내며 기둥에 정통으로 꽂히며 한동안 떨더니 멎었다. 쓰러진 놈들이 비실비실 일어나 겁먹은 얼굴로 술방으로 들어가고, 술방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군졸들이 주춤 뒤로 물러앉았다. 윤 교리가 달려가 기둥에 꽂힌 단검을 뽑아 다시 정충신에게 쥐어주며 위협했다.

“너희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냐?”

정충신도 그들 앞으로 불쑥 다가서며 눈을 부라렸다. 윤 교리가 다시 말했다.

“이 사람은 왜놈 열 놈을 한자리에서 단칼로 목을 따버린 사람이다. 너그들 목숨도 경각에 달린 것이야. 목숨 부지하려거든 점잖게 마셔라. 못하겠다면 단검이 말을 안들을 것이다.”

사태를 알고 그들이 술방 문을 닫더니 잠잠해졌다. 정충신과 윤 교리가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아따 성님도 점잖은 줄 알았디말로 허풍깨나 쓰요이.”

정충신이 말하고 윤교리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네가 전라도 말로 공갈 때리니 저놈들이 꼼짝 못하누만? 내가 진작에 자넬 알았어야 했는데, 몰라봐서 미안하이. 우리 형님 동생 하자.”

그들은 소청을 옆에 두고 술을 마셨다.

“대감 마님이 성님을 깎듯이 모시라고 했는디, 그리하겠소. 하지만 앞으로는 내기를 해서 또 서로 쌍판대기 사납게 보지 않기로 합시다.”

“알았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나. 소청이 자네 아니었으면 큰 낭패를 볼 뻔했네.”

“성님의 애첩이 당하는 걸 어찌 보고만 있겠소?”

“애첩이란 말 당최 하지 말게. 장인 영감 귀에 들어가면 나는 죽었다 복창해야 해.”

“형수님을 두고 바람 피면 죽었다 복창해야지요.”

“그게 아니구 사연이 있네.”

그러면서 그가 소청의 찢긴 저고리를 여며주었다. 소청이 눈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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