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식 남도일보 상무의 ‘무등로에서’

광주역! 50년, 다시 봐도 그렇다
 

정용식 남도일보 상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

산길 푯말에서 종종 만난 ‘그 꽃’이란 시(詩)는 앞만 보고 달려가다 뒤늦게 살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우(愚)를 회환(回還)하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최근 무등로로 사무실이 옮겨지다 보니 생명줄을 놓은 듯한 광주역과 사라진 태봉산의 유래비를 날마다 접하게 된다. 광주 개발의 상징이 된 경양방죽 메우기 작업을 위해 헐어버린 태봉산 자리로 1969년 옮겨운 광주역은 ‘신역’이라는 이름으로 50여년 이곳을 지켜왔다. 황혼기에 접어들어서일까? 역사 주변은 낙엽 떨어진 초겨울 마냥 싸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탯줄을 품었다는 태봉산의 유래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들에겐 어머니 품 같은 곳이었는데 말이다.

학업이나 생계를 위해 12시간 비둘기호에 의지하여 서울역에 내렸을 때 꾸었던 ‘설레임의 꿈’이 하나씩은 있었다. 객지생활 지친 몸을 2천330원 기차표에 기대어 광주역에 도착했을 땐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편안함’의 기억도. 역 광장에 30만명이 노란깃발 흔들며 김대중을 연호했고 민주화를 갈망했던 곳 또한 이곳이었다.

매년 250만명이 만남과 헤어짐속에 정을 나눴던 호남의 관문이 이제는 송정역에 그 자리를 넘기고 완행열차 이용객에 의지하며 그 운명의 향배를 모른 채 골치 덩어리 신세로 전략한지 4년이 되었다. 무등로! 해발 370m 무등산장에서 출발, 굽이굽이 산길 따라 산수오거리와 옛 경향방죽과 태봉산터를 가로 질러 무등경기장 말미까지 1만5천750m 의 길. 무등산의 기운을 안고, 그 중심엔 옛 경향방죽터에 광주시청을 품었고 태봉산터에 바로 광주역이 자리했다. 동서를 관통하는 광주의 가장 길고 대표적인 도로였는데 지금은 쇠락해진 북구의 상징, 양극화 된 지역의 현재를 투영하고 있어 서글프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광주역이 다시금 ‘생동하는 장소’로 재도약의 날개를 달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파급효과가 크다는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되고 코레일과 업무협약을 통해 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까지 8년동안 1조원 이상을 투입한다 하고 8천600개 일자리와 2조원대 생산유발 효과라는 홍보문구도 보인다. ‘창의 문화 산업’를 통한 청년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경제 거점을 조성하여 아시아 문화전당과 연계한 아시아 문화 관문을 만들겠다는 ‘황금빛 청사진’이다. 내일 주민공청회를 통해 부푼 기대가 한껏 커질지도 모르겠다.

거창한 홍보이기에 노파심도 생긴다. 6년동안 국비 250억원과 시비 250억원을 들이는 사업이다. 협업으로 2천163억원이 투입된다 하나 이는 행복주택등 이미 진행중인 사업이거나 도시철도 2호선 연계등에 따른 사업비이고 민자 투자 7천493억원은 아직은 희망사항 일수 밖에 없다. 사업내용 또한 그동안 귀에 박히게 듣고 있는 ‘문화 콘텐츠 산업’ ‘청년일자리 창출’이다.

아시아 문화전당과 시내주변, 송암동 지역의 거대 문화 프로젝트도 별반 진척이 없는데, ‘또’라는 비아냥도 있다. 정부 정책자금이 몰려 있다 보니 곳곳에서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요, 구호이기도 하다. 그 많은 사업지역에 입주할만한 청년들은 있을까? 혹 계획만 무성하지 않나? 라는 우려도 들린다. 윗돌 빼서 아랫돌 메꾸는 실적 만들기라는 요즘의 ‘일자리 사업’을 닮은 게 아닌가라는 걱정도 있다.

흐름에 편승 한쪽으로 몰리고, 윗돌 빼서 아랫돌 메꾸는 사업들이 추후에 어떤 결과를 낳는지 너무 많이 봤기에 그렇다. 50년 100년의 미래를 보고 지긋하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사업계획을 모두가 기대해보는 것이다. ‘광주역 도시재생 사업’이 당장 눈앞은 보기 좋은 그림보다는 지역간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쇠락해 버린 북구지역을 되살려내는 거시적 관점에서 이뤄지는 그런 사업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혹 ‘황금빛 청사진’ 그리기에 급급하여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추진과정이나 완료 후 후회하는 ‘우(愚)’를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이는 광주시민으로서 위화감마저 느끼는 북구민의 소박한 희망일 수 있다. 아파트 투기 쫓아 옮겨 다니지 못하고 그저 북구에만 살고 있는 북구민을 시중에선 무능한 바보(?)라고들 한다. 마침 오늘이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개천절이다. 문득 묻고 싶다. ‘광주역’ 과 우리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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