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83>11장 청년장교

병조판서 이항복은 정충신과 윤인옥을 사랑채에 불러 앉혀놓고 내내 불괘한 표정이었다. 정충신과 윤인옥이 그의 앞, 그 뒤로 명군 군마병 동충평과 졸개 두 명이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지만, 이들로부터 인사를 받은 이후에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나라를 걱정하되 해결되는 것이 없어서 괴로운 마음으로 퇴궐했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사위와 정충신이 웬 낯선 명나라 군사와 함께 물정모르고 희희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항복은 사위 윤인옥의 외모는 멀쩡하고, 정충신이 머리가 깨지고 복색 또한 흙먼지 투성이인 것을 보고 이것들이 저자에 나가서 건달들과 한바탕 다투고 온 것이 아닌가 하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충신, 너는 의주 주먹이 되려고 여기까지 올라왔느냐?”

백사 대감이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물었다. 정충신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그것이 아닙니다요.”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렸다?”

“말씀드리기 황공하오나...”

이항복이 정충신의 말을 묵살하고 사위 윤교리에게 시선을 보내더니 그를 나무랐다.

“너는 또 무엇이냐. 보아하니 저자거리에 나가서 싸운 모양인데, 명군 병사들과 다툰 것인가? 윤 교리는 정충신이 저토록 맞도록 지켜보고만 있었단 말인가?”

윤 교리가 우물쭈물하자 정충신이 나섰다.

“대감 마님, 윤 교리는 저를 도왔사옵니다. 제가 더 날뛰었을 뿐입니다. 명군을 무찔렀고마요. 소인이 다섯 대 맞고 명군은 오십대는 맞았고마요.”

“그래서 이 자들을 잡아온 것이냐?”

“이 자들은 다른 일이옵고...”

“다른 일이옵고라니?”

정충신이 저자거리와 압록강변 나루터 주막에서 겪었던 일들을 가감없이 얘기했다.

“오호, 그래서 저놈들을 잡아왔다?”

“그렇사옵니다. 아군 기병들이 기마 병술(兵術)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역부러 데리고 왔고만이요. 기마 조련법은 물론 종마를 길러서 씨를 뽑아내는 기술도 가지고 있는 군마병이옵니다. 우리 군마의 질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옵니다.”

“누구 생각이더냐?”

“제 생각이옵니다. 우리 기병의 세가 떨어져서 걱정하던 차, 이 자들을 만나니 그런 생각이 났고만이요.”

이항복이 한동안 정충신을 뚫어져라 살펴보더니 가볍게 무릎을 쳤다.

“과연 생각이로다. 아군의 군사력이 떨어지는 것은 기병부대 숫자가 적고, 힘이 약해서니라. 나도 그 점 깊이 우려하였노라. 힘이 약하니 왜군이건 오랑캐에게건 나가면 초장에 무너졌던 것이지. 기병대 본진에 저놈들을 조교로 갖다 붙이면 되는 것이렸다? 그러나 도망가버리면 어떡할 것이냐.”

“도망은 못갈 것입니다요.”

“왜?”

“자기부대 군마를 네 마리나 잃었고, 또 자기 부하를 칼로 베었사옵니다. 장난하듯이 베버리드마요. 자기 부대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옵니다.”

동충평은 이항복 대감과 정충신이 나누는 대화를 멀뚱히 쳐다보며 조금은 불안한 빛을 보였다.

“명군의 기강이 해이해 있긴 하다. 전시도 아니고 평시도 아니고, 또 지들 전쟁도 아닌 묘한 전쟁에 투입되었으니 이 자들은 절박성도 없고, 책임의식도 없다. 그런 병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우리를 도우겠느냐? 풍기만 어지럽히니 걱정이 크다.”

“얘네들 기병부대에 있는 좋은 군마를 끄삿고 오게 할 생각도 가지고 있는디요?”

“고것이 말이 되느냐. 뭐라고 해도 저들은 명나라 군사다. 믿을 것이 못된다.”

“제가 어떻게 해볼랍니다. 대감마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요것들은 사명감이나 직업의식 같은 것은 없고요. 배때지 따뜻하게 멕이고, 가끔씩 여자 붙여주면 정신줄 놓을 거구마요.”

그러자 이항복 대감이 혀를 끌끌 차며 동충평을 바라보았다. 동충평이 멋모르고 웃고, 남방 출신 병졸들도 따라 웃었다. 순진하다 할까, 어리석다 할까, 무슨 일을 시켜도 들어줄 쌍판대기였다.

“무슨 일이고 수순(手順)하겠다는 것인가?”

“그럴 것잉마요.”

이항복이 희미하게 웃자 명군 셋이 하나같이 “쎄쎄” 했다.

“데려온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윤 교리와는 더 이상 어울리지 마라.”

“장인 어른, 저는 삿된 짓 안했습니다.”

“순진한 아이 데리고 기방 출입이나 하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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