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84>11장 청년장교

이항복은 그들의 뒤를 캔 듯이 알고 있었다. 윤인옥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감 마님, 그것이 아닝만이요. 기생집은 아니고 주막이었나이다.”

정충신이 변명했지만 이항복은 묵살했다.

“말 안해도 알고 있다. 기방이나 주막이나 너는 상습범이여. 그러니 너는 지방으로 내려 보내겠다. 대신 정충신은 내일부로 오전에는 병서를 읽고, 오후에는 무술을 닦아야 한다. 무과 시험이 얼마 안남았다. 네가 이치전에 투입되었다고 해도 정탐병 수준이었으니 정규전과 유격전을 익히고, 군 지휘통솔력을 익혀야 한다. 훈련원에서 체계적으로 무술을 익혀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임무를 부여할 것인즉, 명나라 말을 똑부러지게 배워야 한다.”

명나라 말을 똑부러지게 배워야 한다? 무슨 말뜻인 지 몰라 정충신이 멀뚱히 이항복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전쟁이란 전투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전투보다 외교전이 더 큰 전쟁을 이길 수 있다. 명일(明日)이 싸우고는 있지만 그들은 뒷전에서 외교로써 전쟁을 막는 담판을 짓고 있다. 조선반도 운명이 그들 세치 혀에 의해 쥐도새도 모르게 판가름날 판이다. 앉아서 당하겠느냐? 조선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느냐? 조명과 조일 관계를 새롭게 하려면 우리도 대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말부터 똑부러지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이항복이 내처 더 설명했다.

“정충신 너는 북방계의 군마병에게서 군마술을 익히는 한편으로 중국말을 제대로 익혀라. 남방 중국어도 필요할 것이니 남방병사에게서 남방어를 배우도록 하라. 남방병사들이 유구로 쳐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때 낡은 세대는 어쩔 수 없는즉, 너는 넓은 세상을 보아야 하느니라. 늙은 것들은 우물 안에 갇혀 살다 보니 세상천지분간을 못했다. 그래서 수구다.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우리 울에만 갇혀 지냈다. 손자병법의 기본철학이 무엇인 줄 아느냐?”

“지피지기면 백전불이(知己知彼 百戰不貽) 이옵니다.”

“그렇다. ‘고왈 :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故曰: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이니라. 이 말을 우리말로 옮기면 무엇이냐.”

“‘말하자면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의 상황을 모르고 나의 상황만 알고 있다면 한번은 승리하고 한번은 패한다. 적의 상황을 모르고 나의 상황도 모르면 매번 전쟁을 할 때마다 필히 위태로워진다‘ 이옵니다. 지피지기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지기와 지피의 개념으로서 나와 너는 독립적으로 구분이 되었기에 우군과 적군이라는 개념으로 봅니다마는, 손자에 따르면 백전불패가 아닌 백전불태를 씀으로 해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하였나이다.”

“어떤 것이냐.”

“내가 아닌 모든 것이 너인 고로 그것은 적이라는 개념이다, 그 적은 적군도 있지만, 기후와 자연, 지형지세, 세상 민심, 하늘의 운 등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확률을 계산에 넣은 것이옵니다. 그것 또한 적이 될 수 있다는 뜻이옵니다. 백전불이 중에는 끼칠 이(貽)가 있고, 백전불태에는 위태로울 태(殆), 아이 밸 태(胎)가 사용되옵니다. 저는 백전불이의 개념이 타당하다고 보고 있나이다.“

“그렇도다. 지피에는 적군도 있지만 자연, 기후, 지리, 지형조건, 천지운세도 있느니라. 이 모든 걸 알면 천리를 뚫게 되므로 백전백승이니라. 그런데 우리는 나 스스로를 몰랐지만 적에 대해선 더 무지했다. 통신사로 왜나라에 건너간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은 정파적 이해에 따라 적의 동태를 구분했는데, 이중 김성일이 오판한 것이 뼈아픈 실책이었느니라. 황 정사는 왜의 정세를 살피는 한편으로 왜나라를 통일한 풍신수길의 인물 됨됨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했다. 생김새는 쥐새끼같이 볼품이 없어도 교활한 야망의 눈을 갖고 전쟁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하여 머지않아 조선에 병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김성일은 황윤길이 볼품없는 풍신수길이를 띄우고 있다면서, 황 정사가 민심을 동요시키고 있다고 몰아세웠지. 자기 정파가 아니니 그것으로 제거하려는 방편으로 삼은 것이다. 황 정사가 세에서 밀리니 그의 논리도 밀리고, 김 부사의 오도된 정보는 세가 강하니 받아들여졌는 바, 그래서 졸지에 왜의 침략을 맞았느니라. 지피지기의 기본도 모르고, 오로지 정파적 이해로만 사태를 구분했으니 망해버린 것이다. 쥐새끼같이 볼품이 없다고 침략야욕이 없는 것이 아니고, 상이 그럴 듯하여도 호걸이 아닌 놈은 아닌 것이다. 쥐새끼에게도 눈에 광채가 있고, 담력과 지략을 갖출 수 있는 것인데, 편견과 선입견으로 사태를 그르쳤다. 그래서 백전불이가 맞도다. 사물에는 이토록 철학이 있는 법, 너는 천문, 지리공부도 해야 하느니라. 앞으로는 외교전이니 왜의 말을 알아야 하고, 대국 말을 익혀야 한다. 군마 다루는 솜씨는 물론 마의학(馬醫學)도 익혀야 하느니라.”

“배우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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