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 0(zero %), 사회는 붕괴되는가?
윤영선(광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윤영선 광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인류 탄생에 대한 ‘창조론’과 ‘진화론’ 같은 상반된 관점의 끝없는 논쟁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존재하는 것 같다. 경제학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고전학파에서 시작되었던 상품의 가치 판단에 대한 ‘노동가치’와 ‘효용가치’ 논쟁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분배(수요)’와 ‘성장(공급)’에 대한 논쟁도 여전하다. 물론 이 두 가지 논쟁은 상호 연관성이 있고, 정치적 논리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되는 경향도 존재한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정치적 논란도 기실 ‘분배’와 ‘성장’에 대한 오랜 논쟁의 연장이다. 일반적으로 주류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에 의한 시장 배분을 옹호하고, 비주류경제학자들은 상품의 가치가 노동에서 창출된다는 믿음 하에 분배의 공평성을 강조한다. 전자의 학자들은 나눠먹을 파이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국민 모두가 그 혜택을 받아 개인소득이 높아지며, 자본과 노동의 몫은 시장에서 자기의 역할만큼 각각 ‘이윤’과 ‘임금’으로 공평하게 배분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주류경제학자들의 관심사는 온통 경제성장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후자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착취가 발생하며, 시장은 결코 공평한 배분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본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높은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허리띠를 졸라맨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에 대한 분배가 한 번이라도 공평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국민의 삶의 질을 되짚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성장론자들의 주장처럼 경제성장률이 0%(zero)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들의 말처럼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어 길거리를 방황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회 붕괴 현상이 발생할 것인가? 이 문제는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된다. 국어사전에서 ‘경제’라는 단어는 “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것은 경제를 물질(物質) 공급이라는 실체적 관점에서 정의한 표현이다. 칼 폴라니(K. Polanyi) 같은 실체주의자들은 경제를 인간 삶에 필요한 물질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일련의 사회시스템으로 정의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경제 활동은 곧 물질 공급을 위한 사회제도이고, 이러한 제도가 존재하는 한 경제성장률과 무관하게 인간의 먹고 사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자들은 ‘경제적’이라는 단어를 ‘경제화’로 해석하는 것 같다. ‘경제화’는 물질적 공급보다는 항상 화폐적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성’을 의미한다. 오늘날 국내총생산(GDP)도 국내에서 생산하는 상품과 용역을 화폐 단위로 나타낸 ‘경제성’의 국가단위의 표현에 불과하다. 정부는 매년 경제성장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성숙한 오늘날 대다수의 국민들은 경제성장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까? 우리의 삶은 단기에 큰 변화가 없어서 실생활에 들어가는 비용도 매년 비슷한 수준이다. 이 말은 국민의 실생활에 필요한 산업은 우리의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나 단기 생산량의 큰 변화가 없으므로 경제성장률을 견인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정부는 쌀, 전기, 물 같은 생필품 가격의 엄격한 통제를 통해 임금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기업의 이윤율을 유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총생산의 증대는 국민의 실생활보다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사치품이나 기호품을 생산하는 산업에서 발생될 수밖에 없다. 결국 오늘날의 경제성장은 사치품, 기호품, 전쟁무기 같은 새로운 소비영역의 확대를 통해 상승하기 때문에 경제성장률 0%(zero)가 되더라도 물질 공급시스템이 제도화되어 있다면 우리의 실생활은 동물의 기초대사처럼 유지될 것이다.

국가의 경제발전은 여러 사회적 합의과정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제도, 각종 인프라 설치를 위한 개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정부차원의 투자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진행되고 이루어진다. 경제는 이러한 합의 속에서 작동되는 물질 공급 원리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생산과 분배의 사회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이것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적 원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로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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